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 가식으로 뒤덮인 자아의 폭로
허운석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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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참 강한 메시지를 접했다. 기복신앙이 저변에 깔려있는 요즘의 메시지에, 번영신학이 판이 치는 이 어리석은 세대에 강한 일침을 주는 선교사님의 글이다. <긍정의 신학>이 아닌, 온몸과 삶으로 체득하며 하나님과 깊은 내면적 관계를 깨우치는 아포파틱의 방법, 곧 부정의 신학을 말하고 있다.
몸과 삶이 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형적인 십자가의 신학, 고난의 신학, 역설의 신학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고난이 다른 이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갔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왜 왕바리새인인가를 처절하게 들을 수 있는, 보게 되어지는 글이되어졌다. 아프게 읽으면서, 아프게 나를 보면서, 깊은 묵상과 다른 기도를 위해 무언가를 결단해야 함을, 다른 회개를 드려야 함을 생각하도록 돕는 글이다.

자기애와의 싸움, 주님이 오시기 까지 해야 하는 이 싸움. 그 자기애를 끊는 수준까지 갔을 때 누렸던 그 자유.
내가 주님께 드렸던 작은 싸움과 내가 주님으로 부터 받았던 그 자유함.
같은 고백을 글에서 만나는 기쁨도 누렸지만, 더 치열하게 자기애를 끊기까지의 싸움을 해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뻐하지 못했던 허다한 회개들.
내가 또 해야할 회개가 있음을 인정하기 싫어 피했던 새벽제단과 기도들...
그것이야 말로, 내가 기뻐해야 할 것,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였음을 보면서
그 아픈 회개, 그 아픈 기도를 갈망케 도와 주었다. 

나의 모습을 보게 하신 수 많은 사건과 사람과의 교제들... 그 때 보게되는 펄펄 뛰는 자아.
그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이였구나... 그 때 참 힘들게 새벽예배를 드렸는데, 아니 그 때 참 주님의 말씀을 피하고 싶었는데... 내 모습이 역시 왕바리새인이었구나...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내 모습이 그려져 있음이 참 부끄럽기도 했고, 지금에서라도 알게하시고, 깨닫게 하심에 감사도 되었다.
내 의에 빠져있는 내 모습, 그것이 바로 주님을 대적하는 모습인 것을 인정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기쁘게 지금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
내가 처한 모든 형편과 상황이 마냥 감사되는 것.
남들은 십자가라 말해도 내 안에 깊은 평강이 넘쳐흐르는 것.
주님의 성품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고단에 동참할 수 있는 것.

올해는 이것이 되어질 것 같다...
회개케 하시는 수 많은 나의 교만과 나의 완악함을 드러나게 하셨으니 올해는 삶 속에서의 예배자가 되어질 것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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