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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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식 출간 전 가제본으로 만나본 [친애하는 슐츠씨]


내가 정말정말 애정하는 칼럼니스트이자 오터레터의 발행인 박상현씨의 책이 출간되었다. 가제본을 통해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접해볼 수 있었다.

본 책에는 인류의 오래된 습관인 차별과 배제를 소재로 하며, 그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었다. 




가제본은 크게 3파트로 나뉘어 있다. 


우선, ‘여자 옷과 주머니’라는 파트에서는 성역할에 관한 함의가 담긴 의복의 변천사를 다룬다. 옷의 기본적 형태가 성별에 따라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옷에 사회문화적 함의가 담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였던 부분이 바로 주머니였다.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발달을 거듭하여 실용적이었던 남성의 옷과 달리, 대상으로서의 모습에 집중되어 발전해온 여성의 옷은 기능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진화해왔다.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이 해야할 일과 여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지, 그리고 현재 남녀를 불문하고 스스로가 주체가 되지 못하는 지점을 곰곰히 반추하게 되는 파트였다.


다음 파트는 ‘상식적인 남자들’이다. 이 파트에서는 여성의 스포츠 활동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존재했던 20세기 미국을 조명한다. 명확히 말하자면 여성의 스포츠 활동을 성문화시켜 규제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여성이 달리는 것은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었고 관련 규제를 성문화시킬 필요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같은 오래된 편견에 순응하지 않았던 이들이 본 챕터의 주인공이다. 여성의 마라톤 대회 참가가 불가능했던 시기, 마라토너 스위처는 마라톤에 참가하겠다고 결심했고, 그녀의 코치와 남자친구는 변칙 참가를 돕는 공모자 역할을 자처했다. 물론 그녀에게 공모자들이 없었을지라도 전근대적인 룰의 변화는 일어났을 것이고 여성의 마라톤 참가가 가능해졌을 것이다.(1960년대 미국은 거대한 사회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였다.) 단, 오래되고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깨닫고 더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한 공모자들 덕분에 스위치는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으며, 세상은 좀 더 빨리 변할 수 있었다. (사실 본 챕터의 주인공은 몇 명이 더 있는데 이는 다음 장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조금 생략한다. 궁금한 사람은 읽어보시길!:))  


마지막 장인 ‘친애하는 슐츠씨께’에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만화인 ‘피너츠’가 등장한다. 제목에 언급된 슐츠씨는 피너츠의 아버지이자 만화가인 찰스 슐츠이다. 1960년대 미국은 여성 인권뿐만 아니라 흑인 민권 운동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그 선두에 있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흑인 민권을 지지하던 케네디 상원 의원 또한 암살을 당했던 그 해에 찰스 슐츠는 한 선생(글릭먼)에게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무의식적 태도를 형성하는데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함을 피력하며 만화 피너츠를 통해 인종 간의 우정과 관용을 접할 수 있도록 ‘흑인 아이 캐릭터’를 넣을 것을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슐츠씨는 시혜적 태도로 비칠 것을 우려하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르겠다는 답변을 보냈다.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가능성을 닫아두지는 않은 것이다. 이러한 답장에 글릭먼은 흑인 부모들의 의견을 담은 편지를 동봉하여 답장을 보냈고 설득된 슐츠가 그려낸 첫 흑인 캐릭터가 ‘프랭클린’이다. 그의 만화에선 프랭클린을 웃음의 소재로 삼지 않음으로써 기존의 관습을 깨고, 흑인과 백인 간의 뜨거운 논쟁점은 살짝 피함으로써 백인 독자들의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은 채 인종갈등 극복의 메세지를 전달해낸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이 동했던 파트였다.


어떤 사회든 문제는 항상 존재하며 이를 인지할지라도 해결책을 쉽사리 찾아내지 못한다.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항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난하게 만드는 것은 갈등 자체가 아닌 서로를 향한 비난과 혐오이다. 생활 속에서도 빈번히 마주치게 되는 그러한 순간들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곤 했다. 그런 나에게 필요했던 사람이 '친애하는 슐츠씨'가 아니였을까? 조금 비겁해보일지라도 서로를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음을 보여준 슐츠씨와 상현씨, 그리고 어크로스 담당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조만간 완독하고 또 기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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