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바다의 라라니 미래주니어노블 9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김난령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가운 냄새가 납니다. 분명 새 책인데, 익숙한 종이 냄새가 났어요. 책장을 넘기면서 종이 냄새는 더 진해졌고, 어린 시절 보았던 책처럼 약간 거친 질감의 종이가 손가락을 타고 넘어갑니다.

<먼 바다의 라라니>는 처음 만났지만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믿는 아이와 두려움을 믿는 사람들. 산 아래 엎드려 사는 사람들과 믿는 곳을 향해 올려다보는 소녀. 그 소녀가 라라니입니다.

 

많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항상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비한 징조가 내려오고, 누구도 못하는 일들을 해내던 영웅. 지금 우리 이야기를 다룬 동화들도 대부분 그렇지요. 평범하지 않은, 학교에서 그랬다면 문제아라고 할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 1%의 특이한 사람들이 99% 수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라라니는 이 책을 읽는 우리처럼, 내 아이처럼 평범한 소녀입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쉴 새 없이 이야기가 듣고 싶은 그런 소녀. 그래서일까요? 이 긴 이야기도 누군가가 매일 밤 천일 동안 들려주던 것처럼 이어집니다.

 

카나산 아래 작은 마을에는 라라니와 라라니의 단짝 친구 베이다, 그리고 베이다의 남동생 헤츠비, 세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카이산에 사는 무서운 눈 먼 괴물 이야기. 항상 같은 이야기를 듣는 세 아이, 그리고 라라니에게 가장 익숙한 지바. 모험을 떠났지만 바다에 던져진 소녀.

라라니는 단지 엄마를 낫게 하고 싶었고, 옆집 아픈 아이를 구하고 싶었으며 친구 베이다를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라라니의 소원은 큰 재앙이 되어 섬을 덮치고 맙니다. 욕심 많은 괴물이 시작한 일은 라라니가 사는 산라기타까지 미칩니다.

 

이제 12살 소녀는 조그만 낚시꾼 배에 올라타서 지금껏 아무도 건너지 못한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 라라니는 지금껏 모르던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신비한 새 바이 빈카, 우리가 생각하는 인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의 디타사 울로드, 나무 속에 사는 정령 페이 디와타, 모기처럼 생긴 마법사 고육, 땅 밑에 사는 괴물 눈소, 안개처럼 형태가 없는 악령 유타, 죽은 자의 영혼이 담긴 나무 웬보.

 

라라니가 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도와주었던 것은 바로 순수한 아이의 믿음과 신뢰, 사랑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한 조각이 맞춰지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처음부터 화면이 스르륵 넘어가듯 펼쳐지는 이야기에 감탄하게 됩니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때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임을 라라니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정령과 미지의 생명체들은 작가가 필리핀 신화와 민담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생소한 정령들을 우리나라의 신들에 대비해 맞춰보고, 이런 것들도 있구나 느끼는 재미도 컸습니다.

 

후속권은 헤츠비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