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 - 세상을 바꾼 다섯 개의 수
EBS <넘버스> 제작팀 지음, 김홍종 감수, EBS MEDIA / 민음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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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문과는 고려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이과를 선택했던 단순한 이유는 '수학을 좋아해서'였다. 중학교까지는 수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잘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는 그 좋아하던 수학을 잘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수학이 좋아 이과를 선택한 것은 너무나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을 좋아한 이유는 단계단계를 밟아가다보면 하나의 정답에 이를 수 있는 '명쾌함'과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희열', 이 두가지뿐이었다. 그리고 세상살이에도 정답이 있고 그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 수학에 더 끌렸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 순간부터 수학을 멀리하게 되었다. 아니 수학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왠지 배신감이 들었다.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더없이 좋은, 아니 정확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수학처럼, 학창시절을 거치고 사회에 나가면 나의 삶도 정답을 찾아 그 길대로 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참으로 단순한 생각이었다. 인생이 그렇지 않음을 수학의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음이 지금은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다 다시 수학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예상치 못하는 복잡미묘한 세상살이, 온갖 일이 벌어지는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한 가지 답만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 해결되지 않는 온갖 문제들을 접하면서 어지러움증을 겪을 때, 명쾌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그 '희열'을 맞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다시 중학교 수학책을 펼쳐들고 개념과 정의를 들여다보고 수학문제를 들여다보았다, 나이 사십에...

  ​그렇게 다시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될 무렵, '세상을 바꾼 다섯 개의 수' (π, ∞, x, 0, i) 를 부제목으로 갖는『넘버스』를 읽게 되었다. 그야말로 '수학의 언어'를 역사와 철학의 의미로 확장시켜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원주율 'π', '무한'을 뜻하는 기호 '∞', 미지수 'x', 인류가 처음부터 '0'이 있었던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니었고, 마지막으로 허수 'i'까지 다섯 개의 수가 누구의 어떤 호기심과 어떤 노력으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그 여정을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2017년 10월 3일부터 다시 방영하는 'EBS다큐프라임 - 넘버스' 또한 책의 내용을 다시 한번 복습하는 의미에서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흔히 수학에 대해 짧은 생각으로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나 특히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넘버스』는, 수학을 왜 배우고 있는지, 수학 안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수학의 언어의 의미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노력과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야기의 구성은 참으로 흥미롭게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수학의 언어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 언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생겨나면서부터 이미 우리의 삶속에 이미 녹아져 있던 것임을 깨우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책이다. 『넘버스』는 다섯 개의 수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수학이론책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 함께 이루어가는 수학에 대하여 생소하거나 어렵게만 여겨지는 수학의 언어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차근차근 찾아가는,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에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해답을 차근차근 찾아가는 삶의 여정과 닮아있음을 은근히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나는 수학의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수학의 겉만 보고 그것이 수학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근원을, 근본을 깊이 들여다보고 찾아보고 싶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으니, 내 나름의 의미깊은 책 읽기 였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그 시작점에 『넘버스』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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