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 -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등 돌린 남자와 여자. 뜻밖에도 그들은 헤어진 연인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연인이다. 등 돌린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 진실된 표정은 숨긴 채 연인의 관계를 이어나간다. 요시다 슈이치의 연인들은 그런 식이다.

<열대어>의 다이스케와 마미는 동거 중인 연인이다. 마미에게는 애가 있고, 다이스케에게는 과거 부모님이 결혼하면서 형제가 되었으나 지금은 이혼으로 남남이 된 미쓰오가 있다. 서로의 군식구를 받아들일만큼 배려하지만,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따스함이나 이타심이 결여되어 있다. 다이스케는 여름 휴가를 근사한 외국에서 보내게 해주겠다고 큰 소리치지만, 마미나 미쓰오나 딱히 원치 않는다. 호의는 강요로 변질되고, 관계에 미묘한 균열을 일으키고, 급기야 미쓰오가 가출한다. 가출이래도 별건 없다. 며칠 후 집에 돌아온 미쓰오는 언제 가출했었냐는 듯 평소처럼 열대어 어항을 손질한다. 다 똑같이 생긴 열대어. 무리지어 다니지만, 혼자보다도 더 쓸쓸해보이는 열대어. 다이스케, 마미, 미쓰오는 열대어와 다름없이 함께지만 함께일 수 없는 쓸쓸함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열대어>에서 느낀 불편함은 <그린피스>에선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자신의 기분이 상하자 여자친구에게 완두콩을 던지는 남자. 그것도 한알씩, 여자가 주저앉아 울어도 아랑곳않고. 뺨을 때린다거나 발로 내려치는 것과는 종류가 다른 폭력, 미묘하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린피스>의 폭력은 그것이 사실적이고, 일상적이어서 더 기분이 나빴다. 내가 그 여자일수도, 그 남자일수도 있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므로. 용서와 화해라는 감동없이 그들은 어느새 자기만의 복수를 끝내고 연인으로 돌아간다. 시작도 끝도, 절정도 없는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열대어>에 있는 인물들은 딱 표지 그림만큼의 거리를 두고 등을 돌리고 서 있다. 서로에게 도달할 수 없는 시선은 그렇다고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뚫지도 못한다. 목적 없는 시선 덕분에 죄책감없이 여중생과 놀아나고, 집주인의 부인을 꼬시다 말고 내팽개칠 수 있나보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을 요시다 슈이치는 '쓸쓸함의 원형'이라고 표현했다. 과연, 그럴싸하다. 그 쓸쓸함 때문에 책임감이 무너지고 감정이 무뎌지는 현대 일본인들의 이미지가 바로 <열대어>다.

현재, 쓸쓸함이 느끼는 당신이라면, <열대어>에 등장하는 인물 중 어떤 유형에 가까운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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