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주받은 자, 딜비쉬 - 딜비쉬 연대기 1, 이색작가총서 2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너머 / 2005년 5월
평점 :
저렴한 페이퍼 북 형태로 이쁘게 나온 책이다. 당연히 가격도 만원에 못미치는 저렴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다른 환상소설들도 이렇게 정성스러운 모습의 페이퍼 북으로 나와서 부담없이 많이들 사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젤라즈니의 초기작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정말 이후 소설들에서 나타날 모습들의 예언같은 소소한 모양들이 많이 있다. 수백년간 유폐되었다가 돌아온 전설적인 명성을 가진 강대한 영웅, 영웅의 고난, 계략에도 능하지만 결코 인간미나 정의감을 잃지 않는 주인공. 태고의 강력한 힘을 지닌 1세대.
위에서 언급한 요소는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두세 점의 젤라즈니 책을 읽은 내게도 보이는 '젤라즈니' 표 원형과도 같은 요소들인 것 같다.
책은 처음에는 옛 신화를 보는 것 같은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짧은 단편들로 시작하여 제법 긴 중편으로 넘어간다. 아쉬움이 있다면 앞부분의 정말 짧은 단편들에서 느껴지는 시적인 울림이 뒤의 중편들에서 충분히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딜비쉬의 활약과 능력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을 덜 수 있다고나 할까?
속칭 먼치킨 주인공을 바란다면 젤라즈니 책을 보면 답답할 것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강한 존재이지만 최강자도 아니고 다소 사기적인 계략도 마다하지 않고서야 겨우 승리하곤 하니까. 하지만 독특한 신화의 향기를 맡고 싶다면 젤라즈니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지만 근본적으로 신화를 공부한 사람의 현학적인 문장과 구성은 꽤 즐거운 소재이다.
다행히 딜비쉬는 신들의 사회 같은 작품에 비해서는 간결하고 고풍스러운 문장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