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여성 롬김, <사회체계이론>의 오역들 1
논문 준비와 루만 입문서 번역으로 바빠서 니클라스 루만의 Soziale Systeme의 한국어판인 <사회체계이론>(한길사)의 오역들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작업을 미루어왔다. 그런데 얼마전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보다가 '2008 한국 출판문화상'의 번역부문 후보작에 이 책이 올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도대체 누가 이 책을 추천했는지 의문스러웠다. 추천한 자는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지 않은 자라면 책의 페이지 숫자보다 더 많은 오역들로 가득찬 이 책을 한글로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금씩이나마 이 책의 오역들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고자 한다. 이러한 오역 밝히기 작업은 박여성 옮김의 개정판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 판단으로는 그분은 루만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목적은 완전히 새로운 번역이며 나의 세미나 동료들은 그 일을 기꺼이 할 의지가 있다. 사실 4년 정도 루만 세미나를 진행해오면서 우리는 이미 <사회적 체계들>의 70% 이상을 초벌 번역해놓았다.
책 제목이 왜 오역인지, <사회체계이론>의 역자가 루만의 이론 구도를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 반복되는 몇몇 주요 단어 오역에 대해서는 <루만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사회적 체계들'을 중심으로>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아래에서 <사회체계이론>은 한길사에서 나온 번역본이고 그 페이지를 표시했다. <Soziale Systeme> 다음의 'S.**'는 독일어 페이지 표시이고, 그 아래의 번역문은 내가 옮긴 것이다.
<사회체계이론> 53쪽
그래서 보편이론, 특히 분화의 이론으로서 재귀준거이론은 스스로를 자신이 분화된 결과로 간주해야 한다. 재귀준거에 대하여 이론이라는 명칭을 정당화하는 데 대한 제약은 바로 재귀준거에 대한 몰입이라는 비임의성에 있다.
<Soziale Systeme> S.10
그래서 어떤 보편적 이론, 더구나 분화 이론인 보편적 이론은 자기 자신을 분화의 결과로 간주할 수 있다. 보편적 이론이 그 자신에 대해 이론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걸 정당화해주는 제약조건은 자기지시[자기준거]를 허용하는 것이 이렇듯 임의적이지 않다는 점에 있다.
<사회체계이론> 54쪽
자의적 출발에서도 헤겔이 구성한 체계에서처럼 이론구축의 진전과정에서 임의성이 취해질 수밖에 없다.
<Soziale Systeme> S.11
그리고 헤겔의 체계에서 그런 것처럼 출발점이 자의적이라 하더라도 이론 구축이 진전되면서 자의성은 사라진다.
<사회체계이론> 57쪽
의미, 시간, 사건, 행위, 기대 따위의 개념이 현실세계에 진짜로 실존한다고 우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Soziale Systeme> S.13
의미, 시간, 사건, 행위, 기대 등등이 현실 세계에 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체계이론> 58쪽
그 시도는 비(非)구심적으로 구상된 세계와 공동체에서 다극적인(따라서 다중맥락적인) 이론을 전개한다.
<Soziale Systeme> S.14
그런 시도는 탈중심적으로azentrisch 파악된 세계와 탈중심적으로 파악된 사회 속에서 다중심적인polyzentrisch (그 결과 다맥락적이기도polykontextual 한) 이론을 발전시킨다.
<사회체계이론> 59쪽
특히 지난 10년간 이루어진 일반체계이론의 방향전환은 사람들이 흔히 보는 것보다도 훨씬 심각하게 사회학의 이론적 관심사들과 대립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학의 이론적 논의에서 여태까지는 익숙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추상화와 복잡화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그 괴리를 메워줄 연결고리를 제안하고자 한다.
<Soziale Systeme> S.15
일반 체계이론에 있어서의 지형 변화, 특히 최근 10년 사이의 지형 변화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사회학의 이론적 관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사회학의 이론 논의에서는 이제까지 익숙하지 않은 수준의 추상성과 복합성을 강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러한 연관을 수립하고, 이러한 간격을 메워보려고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