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머리 소녀와 곰 세 마리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베틀리딩클럽 취학전 그림책 4
스티븐 가르나시아 지음, 박무영 옮김 / 베틀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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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디락스 경제, 골디락스 행성, 골디락스 존 등에 쓰인 골디락스19세기 사진가이자 작가 조셉 쿤달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을 용어다. 구전되던 이야기를 1837년 로버트 사우디가 기록 출간한 것은 제목이 세 마리 곰 이야기. 수컷 곰 세 마리와 함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금발 소녀가 아니었다. 곰들은 온순하고 선한 존재로 그려진다. 죽이 알맞게 식는 동안 그들이 잠깐 나간 사이 실버 헤어를 가진 무례하고 뻔뻔한 노인이 나타난다. 노파의 무단 가택침입과 무전취식 행위와 착한 곰들과의 선악 구도가 이야기의 골자였다. 그런데 출간 12년 뒤 동화를 쓰던 조셉 쿤달이 어린이를 위한 즐거운 이야기의 하나로 만들기 위해 어린 소녀를 등장시킨다. 메시지도 안전과 피난처에 관한 기준(?)에 관한 것으로 바뀐다. 1860년 이후 수컷 곰 세 마리 역시 세 가족으로 바뀐다. 구전되던 옛이야기는 어떤 시대 어떤 작가의 손에 기록 배포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역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옛이야기는 지금에 맞게 고쳐 쓰고 제안하는 시도 역시 작가들의 의무다. 20세기 스티븐 가르나시아는 골디락스 속 이야기는 그대로 두되 집과 가구, 소품들을 특별하게 설정하여 기록한다. 가구와 옷, 주방 식기들은 누구라도 일상에서 쓰고 있는 물건이다. 그것이 그저 생활잡화가 아닌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작품일 수 있음을 한 세기가 지나가는 시점에 기억하고 기록해 두고 싶었던 듯싶다. 그가 선택한 매체는 다른 것도 아닌 그림책이다. 아이들이야 이야기에 집중할 뿐이다. 디자인을 알고 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성인 독자도 사로잡았다. 책 속에는 다른 분야의 정점에서 시대를 놀라게 한 디자이너들 작품이 빼곡하다. 그것을 그림책으로 가져 와 배경으로 깔개로 옷으로 조명으로 쓴 작가는 새로운 세대가 누릴 그림책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칼 라거펠트가 요정으로 등장하는 신데렐라, 벌거벗은 임금님, 건축가로 등장하는 아기 돼지 세 마리까지 옛이야기와 현대의 가치를 접목한 역작들도 훌륭하다. 가능하다면 원문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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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집 놀이책 - 완전 아늑한 집과 건축의 모든 것 생각이 쑥쑥 브레인스토밍 미술
라보 아틀리에 공동체 지음, 이미옥 옮김 / 시금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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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범주를 확장한다면 도감류와 액티비티북까지 품을 수 있을 것이다. 100% 액티비티북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겉표지까지 집 만들기에 쓰도록 알뜰히 구성되었다. 본문은 사진, 조형물, 드로잉 등 이미지가 될 수 있는 모든 작업이 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향하게 했다.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극작가들이 모여 주거라는 문제가 자기 분야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고민한 결과다. 참여한 이들은 미술 교육을 위해 뭉친 독일 현직 미술가들의 모임, 라보 아틀리에 공동체다. 20년 넘은 이 공동체의 목표는 서로 의견과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책은 너무 심각하지 않게 진행하지만 아주 전문적인 내용도 적절히 넣었다. 하나의 개념을 인지하는데 필요한 기본 원칙, 유래와 역사, 현 실정들을 골고루 포괄적으로 안내하면서 눈높이도 고려했다. 하지만 복잡한 글은 건너뛰고 지나가도 그만이다. 적어도 지금 살아가는 공간의 의미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으면 될 것이다. 뚜렷한 서사가 필요하지는 않다. 맥락을 파악하기보다 다만 어느 선에서 선택하고 참여하도록 문제를 던져놓았을 뿐이다. 문제를 내놓았다고 해서 지시하고 명령하여 참여하도록 만드는 방식은 아니다. 일단 독자가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제시한다. 거기에 의문을 가진 독자는 상황개선을 위한 판단을 내린다. 그런 다음 적절한 실행으로 옮겨가게 된다. 예를 들어 허니, 이쪽으로 와!’ ‘다리도 없는데 어떻게 건너가지?’라는 대사를 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리를 그려 넣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들이 짜놓은 구성 안에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재미나게 이것저것 놀며 그리며 넘기다 보면 몰랐던 역사도 알고 자재와 도구, 인테리어, 집 정리까지 돌아보게 된다. 그것도 아이들이 가장 쉽게 직접 손으로 그려볼 수 있는 방식이어서 좋다. 그렇게 집에 관한 과거 현재 미래와 대안까지 제시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애완동물은 반려동물로 고쳐 써야 하고 수도 계량기 정도는 한국의 것으로 교체했어야 한다. 계량기에 관한 질문 맨 처음은 계량기 위치로 해야 하지 않을까? 각자의 활동 영역을 넘어 한가지 지향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는 이들의 모임이 있다는 건 왠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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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미술시간 - 2022 아침독서신문 선정, 2021 한국학교사서협회 추천, 2021.07+08합본호 학교도서관저널 추천 바람그림책 108
하세가와 요시후미 지음,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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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꾼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하세가와 요시후미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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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 네 이름 - 조금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너에게
구스티 지음, 서애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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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비정상, 장애 비장애의 기준을 논하는 그림책은 아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을 피할 수도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어느 아버지의 기록이라 보면 좋겠다. 어린 독자들은 그저 즐겁고 성인 독자들에게는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책이다. 이제 곧 부모가 될 모든 이들이라면 태어날 아기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을 버리게 만들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에게는 모든 아이가 부모의 기대만큼 자라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게 한다.

말코가 다운증후군을 지닌 채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딱 절반이었다. 자신의 작업처럼 다시 그릴 수 없고 고쳐볼 수도 없는 아이를 안은 작가의 심정은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고백의 진솔함이 그 마음을 충분히 읽게 한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말코의 존재가 부모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 셈이다. 작가 구스티는 양육자로서 가져야 할 조건 없는 온전한 사랑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으로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스케치는 즐겁다. 순간의 메모로 드러난 작가의 감정과 마음껏 그려낸 말코의 그림이 어우러져 이 가족의 역사가 되었다. 아빠는 힘들었으나 엄마로서의 자연스러운 수용을 바라보는 시선도 숨기지 않았다. 말코의 현재 상황은 알 수 없으나 행복한 날들을 살아갔으리라 짐작해본다.

구스티는 일상의 기록인 만큼 그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도구를 활용했다. 무제한의 자유로운 시간을 아들과 함께하는 공간 안에서 함께 즐기며 표현한 흔적이 경쾌한 디자인으로 완성되었다. 주로 드로잉북에 볼펜으로 그려낸 크로키들은 예측하기 힘든 말코의 움직임을 잘 보여주었다. 하루를 정리하거나 어떤 중요한 일화들은 시간순을 따른 만화기법으로 보여주어 거리를 두고 한발 물러나 읽게 된다. 독자들도 이즈음엔 한숨 돌리며 이들의 역사를 응원하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그런 식의 기록은 남길 수 있다. 지금 시작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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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인 사람들 - 시와 그림으로 보는 어린이 인문학 단비어린이 그림책 12
프랑수아 데이비드 글, 올리비에 티에보 그림, 길미향 옮김 / 단비어린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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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티에보가 만들어낸 16개의 초상은 잘 조직된 시어들의 의미를 확장 시킨다. 언어의 세공사인 프랑수아 데이비드의 의미심장한 시들에 이미지가 결합하여 한층 중요한 메시지가 되었다. 집안 꼭대기나 구석진 곳에 있을 법한 다락방과 이미 잊혀져 버린 장소를 탐험하여 구해낸 물건들이 이야기로 승화하는 과정은 놀랍다. 더구나 그것이 초상의 형태여서 어떤 이미지보다 더 강렬한 설득력을 지닌다.

사진 이전의 기록인 초상화는 그리는 이와 그려지는 대상이 함께한 시공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또한 인물의 지위나 성격 내면까지 드러나기도 했다. 과거의 삶을 증언하는 물건을 주제에 맞게 배치하여 초상으로 제시하는 올리비에의 이미지는 그것을 즉물적으로 보여준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응용한 이미지들은 일상적 소품들의 유기적인 관계로 더 익숙하게 다가와 독자의 참여를 요구한다. 거기에 적절히 배치된 물건들을 하나씩 발견함에 따라 독자는 또 다른 해석을 더하게 된다. 그렇게 두 작가의 제안을 보고 즐기며 인간 내면을 성찰하고 역사를 되새기며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어린 독자들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방식이다. 영화감독, 포스터와 무대 제작, 텔레비전 각본가 등 다양한 이력이 만든 경험치가 만든 결과다. 단어와 함께 놀며 언어의 경제성을 고민하고 완벽히 제어하는 시인이 함께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들 수만큼 다양한 얼굴이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여러 가지 다른 얼굴을 갖고 산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얼굴을 만나게 되는지는 짐작할 수도 없다. 이 책에 담긴 16가지 얼굴은 우리 생애 동안 갖게 될 얼굴일 수도 있고 우리가 만나게 될 이의 것일 수도 있다. 오래된 화석이 채워주고 지탱해 주지만 종종 자신을 잊어버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 자신을 포장하며 믿을 수 없는 말로 우겨대는 수집하는 사람, 시계태엽을 꼭꼭 감아 내일로 가면서 거만하게도 현재엔 무관심한 미래의 사람 등 잊었거나 기억하는 얼굴을 하나씩 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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