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문지아이들
하세가와 슈헤이 글.그림, 김영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기억해낸 엄마의 휘파람 소리는 샹송 바다(La mer)’였다. 아빠 없이 단둘이 지나온 꽤 오랜 시간 속에서 아이에게 엄마는 자주 울었고 가끔 휘파람을 불었던 기억으로 남았다. 아빠 기억 속 선율은 딱 한 번, 결혼을 생각하진 않았어도 어쩌면 엄마에게는 진짜 사랑이 시작된 순간 불었던 휘파람이다. 다시 아들이 들려주는 휘파람은 아빠가 서 있는 일상의 배경을 바다로 가득 채운다. 슬픔이 바다 깊이로 울컥울컥 차오르는 경험과 엄마에 대한 기억의 시각화다. 줄곧 다른 곳만 보던 아들과 아빠는 같은 기억을 확인하는 순간 마침내 서로를 마주 본다.

엄마가 어떻게 되었다거나 그래서 아빠는 어떻게 하기로 했다거나 그동안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등의 설명은 없다. 다만 글과 그림의 서사로 자연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하며 대화하는 동안 아들도 아빠도 격한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무리할 필요 없다 말하는 아이는 성숙했고 엄마와의 일상을 모르는 아빠는 서툴고 혼란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차분한 그들의 대화가 더 쓸쓸하다. 한 시대가 가고 오는 상황을 커다랗고 커다란 배로 이미지화하는 설명 너머엔 분명 배를 감싸는 바다가 있다. 바다는 엄마다. 배를 보러 가자는 아빠의 말에는 바닷가를 걸으며 엄마를 추억하자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부두에 도착한 아이는 엄청나게 커다란 배를 본다. 아빠와 아들 둘만 남은 일상이, 둘이 나아갈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기본 삼원색만으로 가족 구성원 세 사람에 빗대어 채색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원색들이 조금씩 다른 비율로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단다.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반영된 듯싶다. 의도를 들으니 아이와 아빠가 스며들어 만들어낼 이제껏 없던 색을 기대하게 된다. 사실 채색 방식과 커다랗고 커다란 배라는 원제목과는 사뭇 다른 면지 속 그림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안개 속처럼 모노 톤으로 처리된 장면 속 작은 조각배를 타고 노 저어가는 부자의 모습이 진짜 현실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 물건 그리고 고양이
가이아 스텔라 지음, 김혜영 옮김 / 한솔수북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설명하듯 디자인한 표지 그림에 고양이는 없다.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한다. 첫 장면에 따르면 고양이 올가가 그의 반려 가족과 그들이 사는 집을 소개하려는 모양이다. 모든 사물은 제품 카탈로그처럼 각각 배치되었다. 물건 그림들이 모인 장면을 정의하는 짧은 한 줄 글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주는 기능을 한다. 글은 상관없어 보이는 몇몇 물건들까지 그들 관계를 유추하게 만든다. 책 전체를 이끄는 고양이 올가의 서사가 있지만 그마저도 독자가 구성해야 한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읽기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우선 정갈하게 자리 잡은 그림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 좋다.

러시아 혁명을 전후로 등장하여 1920년대 예술에 적용되던 구성주의를 기억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이념적인 이유로 1939년에 종식된 후 60년대 서유럽에서 재평가된 추상표현의 하나다. 1982년생 가이아 스텔라는 구성주의 예술가 나탈리 파랭과 블라디미르 레베데프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한다. 실용성과 사회적 효용이라는 구성주의의 특징은 정보 전달을 위한 디자인에 효과적으로 발현된다. 가이아 스텔라의 방식은 조금 더 나아가 개별화한 사물들과 사람 사이를 잇는 장치로 고양이를 데려왔다. 장면마다 올가의 귀여운 흔적을 찾아 이야기를 이어가게 했다. 한 집안의 풍경을 고양이 올가의 시선과 입장에서 설명한 것일 수도 있다. 올가를 다 못 찾은 독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양이가 되어 책을 넘겨보아도 좋겠다. 구성상 사실은 사람과 고양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 사람에게나 고양이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사물이 꽤 많기 때문이다.

판화기법으로 찍어낸 그림은 대상을 선명하게 복원하기보다 흐릿하거나 빛바랜 시간의 흔적을 보여 준다. 판화는 잉크의 양에 따라 혹은 찍을 때 압력에 따라 모두 다른 그림이 된다. 집안을 구성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것은 누군가 짧거나 오래 써 온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 빛바랜 듯 시간이 보이는 판화가 잘 맞는다.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크고 작은 여러 나라를 병합한 소련의 구성주의가 더 잘 맞아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가 나를 부를 때
수잔 휴즈 지음, 캐리 소코체프 그림, 김마이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젖다 Wet》 《차가운 발을 위한 해결책 Solution for Cold Feet그리고 우리의 작은 문제들 Other Little Problems. 캐리 소코체프가 만든 책들은 제목만으로도 비범하게 느껴진다. 물론 아직 미번역본들이며 번역본은 딱 한 권 ‘B가 나를 부를 때뿐이다. 제목은 독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특히 부름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는 아주 복합적이어서 원제목 What Happens Next를 살렸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창백한 푸른색과 노란색 톤이 대비되는데 배경 전체에 회색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쓸쓸한 기분이 든다. 괴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아이의 고립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다만 어느 쪽도 아닌 중립적인 흰색이 제목이 된 원서에 비해 주인공의 색인 파랑을 짙게 인쇄한 번역본은 왠지 결론을 다 알아버린 듯한 찜찜함이 있다. 실제 제목도, 제목 컬러도 달라진 상황에서 독자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술 방법은 대본을 쓰는 것과 같이 매우 도식적으로 객관화했다.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이 덜 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혹은 같은 상황의 독자가 읽을 때 어느 정도의 거리감으로 각자의 상황을 대입해볼 수 있는 형식일 수도 있다.

따돌림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있다. 그 양쪽 입장의 논리 또한 분명하다. 아니 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당한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학교 안에서 일어난 따돌림에 대해 두 입장을 함께 조망하고 문제의 핵심을 각자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다. B가 주인공을 괴롭히는 이유는 그저 이상하다는 것이 전부다. 딱히 논리는 없었던 거다. 다행히 거기에 대응할 는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로 괴롭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아이다. 게다가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모든 사람이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며 흙과 물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완벽히 달라진 건 아니어도 이니셜이 아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이미 희망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빛 산책 딱따구리 그림책 19
레이첼 콜 지음, 블랑카 고메즈 그림, 문혜진 옮김 / 다산기획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은 산책 끝에 달님과 함께 잠들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빛 산책 딱따구리 그림책 19
레이첼 콜 지음, 블랑카 고메즈 그림, 문혜진 옮김 / 다산기획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낙엽 지는 가을 어느 저녁, 엄마와 아이는 잠들기 전 의식처럼 산책에 나선다. 마침 보름달이 조금씩 떠오르는 중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 달은 더 높이 떠오르며 여러 형태로 아이와 눈을 맞춘다. 온전한 달을 만끽한 아이는 달이 지켜보는 그 잠깐 사이 잠이 든다.

도시에서 자연은 들러리다. 코너마다 서 있는 나무가 그렇고 창과 현관 앞에 놓인 화분이 그렇다. 작은 공원 안 더 작은 분수에서 목을 축인 새들은 도시를 떠난다. 아이가 그토록 보려 애쓰는 달은 단번에 제 모양을 온전히 다 드러내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하늘을 가린 높은 건물 너머 달은 부분만 보일 뿐이다. 원제목이 City Moon 임을 알고 보면 이야기는 좀 더 순조롭게 읽힌다. 아이가 사는 도시 사람들은 창 안쪽에서 벽에 둘러싸인 채 앞만 보고 걷는 동안에도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엄마와 아이만의 시간을 강조하고 싶은 연출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다른 곳으로 눈 돌릴 여유 없이 팍팍한 도시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든지. 엄마로서는 이 산책의 목적이 다만 아이를 재우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속 시원히 둥실 떠오르지 않는 달에 관해 다양한 질문과 대답을 아이와 나누는 시간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달, 달그림자, 같은 달, 딱 하나인 도시에 뜬 보름달은 어디로 숨었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도시 건물이, 구름이, 생각이 달을 가릴 뿐이다. 달을 맞이하고 교감하며 짧은 산책의 즐거움과 살아있는 순간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아이는 편히 잠든다. 달은 아이 방은 물론 바쁜 일상을 마무리한 불 꺼진 도시를 환히 비추며 감싼다. 도시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저 달도 새벽이면 돌아갈 것이다.

모든 장에서 표정 변화가 거의 없거나 비슷한 사람들에게서 도시 풍경은 더 건조해 보인다. 그 안에서 아이와 엄마의 걸음은 오히려 경쾌하다. 적절히 대비되는 컬러와 정교한 연출이 느리고 달콤한 꿈과 같은 산책을 따뜻하게 전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