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 인간은 어떻게 미지의 세상을 탐색하고 방랑하는가
마이클 본드 지음, 홍경탁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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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마이클 본드 지음 홍영탁 옮김, 어크로스

“길을 잃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어렸을 때부터 길을 잃은 경험은 숱하게 있지만, 어른이 되어 서울에 상경한 이후 지도 앱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고, 무엇보다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서울 시내에서도 처음 가봤던 때의 설렘, 두려움, 호기심으로 무장한 두 눈과 긴장한 몸짓은 온데간데없고, 지치고 피곤한 눈과 흘러내릴 것 같은 몸을 이끌고 헤매는 일 없이 터벅터벅 집에 들어가는 것도 이제는 흔한 광경이 되어버렸다.

문득 그런 모습을 인지하고 나면 같은 목적지를 다른 방법으로 가보거나, 여행을 떠나곤 했다. 아는 이 하나 없고, 머릿속에 지도를 상상해 그릴 수 없는 ‘타지’에서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걷는 길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날 인도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려운 상황을 ‘직시’하는 법을 배워갔다. 타지에서는 ‘타인’같은 나를 발견하기 쉬웠고, 길을 찾을 땐 부득이하게 지도 앱을 이용하는 것밖에 답이 없긴 했지만.
어쩌면 길을 잃을수록 지도에 더욱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예상하지 못한 다른 차원의 스트레스에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여겨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는 생각으로부터 길 찾기에 실패했다는 낙망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두려움은 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책을 읽어가며 ‘길을 찾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필요한 기능이면서, 자신의 위치와 자신들 둘러싼 환경을 인지하며, 삶에서 주체성을 깨달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길을 찾는 것은 ‘애초에 좋은 길잡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책은 독자를 북돋아주고 있었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길을 찾아 걷는 인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은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실험과 이야기들을 한데 묶어, 길을 찾아내는 인간의 역량 발전, 성별에 따른, 나이에 따른, 상황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지만, 복합적인 내용을 통해 책은 ‘GPS에 의존하여 걷지 말고, 삶에서 길 잃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GPS 사용이 보편화되어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편리’라는 이름 하에 인간의 능력을 묻어두고 살고 있다. 이는 삶의 길(진로)를 찾는 것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을까.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 감정’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잘 다뤄내는 것은 ‘경험’에 의한 능숙함이 필요하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누구도 능숙할 수 없고, 해결 방법을 도출해낼 수 없다. 삶의 경험은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다음 발걸음을 떼는데 동기를 부여한다. 그런 차원에서 ‘안정’을 이야기하며 인간이 ‘느낌의 숨통(범위)’을 조이는 것은 오히려 현대사회와 스스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의 위치를 알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주어진 길을 차근히 지려밟아 표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비록 스스로 생각하는 멋지고 완벽한 루트를 한 번에 밟아내지 못하더라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걸어낸 찰나의 걸음은 뒤돌아갈 수 있는 여유와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선물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다. 어머니께서 가라사대, “세상의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다”라는 마음으로 살면 어떨까. 인간의 걸음걸이 중에 무의미한 걸음은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표방과 표류를 일삼는, 인생의 주체적인 탐험가가 되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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