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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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슈퍼노바

 

 1996년 밴드 오아시스는 2(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세상에 내놓는다. 이 앨범에 실린 Champagne Supernova는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그들의 두 번째 히트곡이 되었다. (당연히 첫 번째 히트곡은 Wonderwall이다.) 그러나 가사는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의 행렬과 같았고, 훗날 BBC가 선정한 가장 최악의 가사가 되기도 한다. 가사를 쓴 노엘 갤러거는 한 인터뷰에서 약에 취해 가사를 썼으며 자기 자신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밝혔다. 샴페인처럼 터지는 초신성(超新星).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들은 갑자기 밝게 빛나는 별을 새로 태어난 별이라 여겼으나 실제로는 죽어가는 별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기 직전에 내지르는 비명이었으며, 별의 중심부는 이 폭발을 끝으로 점차 오그라들어서 중성자별이나 블랙홀로 변하게 될 터이다. 오아시스의 노래는 제목처럼 브릿팝의 짧은 전성기를 마무리 지으며 터졌고, 그 폭발의 잔해는 라디오헤드, 뮤즈, 콜드플레이와 같은 밴드들에게 긴 어둠으로 향하는 우울감을 선사했다.


 오아시스의 노래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How many special people change, How many lives are livin‘ strange (마나 많은 특별한 사람들이 변해갈까,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이상하게 살아갈까)이 책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에 그 대답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특별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상하게 흘러가는 인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독가스와 질소 비료를 합성하여 인류에게 생사를 동시에 안긴 프리츠 하버, 전장 한가운데서 일반상대성 방정식의 해를 풀어 특이점이라는 종말을 발견한 슈바르츠실트, 수학으로 우주를 샅샅이 살펴보다가 심장의 심장이라는 심연을 응시하게 된 그로텐디크, 원자 속의 전자처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는 채 안개 속에서 헤매는 하이젠베르크와 상상을 통해 자신의 여러 미래를 살아보는 슈뢰딩거 등. 그렇다면, 이 책의 목적은 그러한 정보 전달에 그치고 마는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인생들은 우리에게 어떤 빛,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하면서 폭발하는 초신성의 마지막 순간과 같은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 빛을 올려다보는 우리는 경이감에 빠져버리고 마는데, 그건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우주에서 온 색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 인생의 순간들을 우리는 상상을 통해 채울 뿐이다. 그들이 남긴 빛은 마치 일생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무수히 많은 열매를 맺는 레몬나무처럼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것들을 남기고 스러진다. 그러나 그 순간이 언제 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레몬나무의 기둥을 잘라 그 속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밤하늘 위로 샴페인처럼 터져 나오는 빛을 보고서야 별의 최후를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제 천체가 오그라들며 기나긴 어둠 속으로 향하는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가 찾아온다. 그들이 남겨놓은 지식의 산물들은 성운처럼 우리를 감싼다, 이 책의 원제인 '끔찍한 푸른빛 (Un Verdor Terrible)'으로.


 다시 이 책의 첫 장인 '프러시안 블루'로 돌아가서 그 장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프란츠 하버는 자신의 과학적 발견에 죄책감을 느낀다. 질소 비료의 발명으로 인해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p. 42) 이 허구의 문장이 작가가 소설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남긴 질문이다. 한 일생이 남기고 간 빛이 꺼지고, 레몬들이 썩어가기 시작한다. 그 위로 새로운 레몬나무들이 자라나 정원 한편을 뒤덮을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밤이 찾아온다. 이 중 어떤 레몬나무는 훗날 역병을 퍼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밤의 정원사는 우리에게 이해의 몰락 뒤에 남겨진 윤리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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