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직업 - 세 편의 에세이와 일곱 편의 단편소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미현 옮김 / 이소노미아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은 때로는 너무나 섬세하고 찰나의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져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과 감정에 대해 다시 살펴보게 해주는 반면, 어느때는 난해함을 느끼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한참을 헤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섣불리 집어 들고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왠지 모든 문장을 이해해야만 할 것 같은 혼자만의 압박에 말이다. 그러나 세상 어떤 문학을 수학문제처럼 풀어내겠는가? 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녀의 감정과 의식을 따라가다보면 머릿속이 뿌얘지는 것 같다가도 그 난해함을 뚫고 만나는 한 두 문장에 쾌감을 기억하며 그렇게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세 편의 에세이와 일곱편의 단편 소설을 만났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단편 소설 <유산>이었다.촉망받는 정치인 길버트 클랜든이 교통사고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내 안젤라의 유품을 정리하며 일기장을 읽는다.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는 이야기. 아내가 죽고 나서, 아내가 자기를 떠나 다른 남자인 B.M.의 세계로 감을 깨닫는 이야기, 일기라는 매체로 인해 뒤늦게 안젤라는 권력아닌 권력을 되찾는데, 자신만만하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흘러가다 결국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스런 길버트의 표정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매일 일기를 쓰는 한 사람으로 일기가 단순히 기록물을 넘어 남편 밖, 세상 밖으로 나오는 통로가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단편 소설 <거울 속의 여인>은 내게는 난해했다. 솔직히 이런 독투를 리뷰에 쓰기 창피하지만, 어쩌면 이런 솔직한 감상이 나와 비슷한 독자들에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독서도 있음을 그런 면에서 공감을 하지 않을까 싶어 솔직하게 남긴다.이 소설은 뭐랄까, 감각적인 서술이 더 앞서다보니,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을 내가 못따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여러번 되물어봤지만, 끝내 나는 핵심에 닿지 못한 듯. 그래도 혼란스러움이 그녀의 문장 안에 잠시 앉았다 나온 것만으로도 그녀의 의식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나왔음을 경험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에세이 <여성의 직업>은 작가로서 여성으로서 마주해야했던 당대의 편견을 보게 되며, 집안의 천사라는 상징을 통해 남성위주의 가치관을 죽여야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외친다. 집안의 천사의 특징은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매력적이고 이타적이고, 가끔씩 글을 쓸때면 찾아와서 방해공작을 하는데 결국 이 천사를 죽여야만 정직한 글을 쓸 수 있다. 예전에 읽어서 조금은 가물가물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함께 읽으면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에 관해 더 깊게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자기만의 방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당대의 상황이 지금 현재의 여성들에게도 너무나 정확히 관통하고 있음에 매번 깜짝깜짝 놀란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유령의 집, 인류를 사랑한 남자, 견고한 것, 벽에 난 자국, 초상 이라는 단편 소설과 어째서, 런던모험 거리 유랑하기라는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 편집자들의 대화가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난해하게 읽은 작품들이 이 대화안에서 내게 어떤 길잡이가 될 수 있을까 싶어 반가웠고, 172 페이지의 대화에서 나오듯 '누군가는 울프를 탁월하다 느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부담스럽거나 불편할 수도 있을 거예요.'라는 말에서 가끔씩 고군분투 하며 읽는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여행하며,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 사이에서 건져낸 문장들에서 더욱 가까워짐을 느껴본다. 울프의 정신과 사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히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