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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공작새 ㅣ 사이그림책장
헤르만 헤세 지음, 오승민 그림, 엄혜숙 옮김 / 가나출판사 / 2026년 3월
평점 :
나비채집이라는 방학숙제가 있던 시절을 살았었다. 한마리 한마리 수집할 때마다 환희를 느꼈던 동생에 비해, 세상 징그럽고 나비의 잔해가 손에 묻을까 두려워 목장갑을 낀채 둔탁한 손으로 조금씩 부서진 나비 수집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공작새가 아름답다는 표현이 이해가지 않던 어린시절을 지내왔다. 공작새의 깃털이 끔찍하게 징그러워, 그 눈들이 꼭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아 보고나면 귀신이라도 본듯 깜짝깜짝 놀라곤 했던 기억이 여전하다.
마흔다섯이 훌쩍 넘어버린 나이에 이 책은 어린 시절과 나비 채집을 하던 순간 그리고 공작새의 깃털 눈을 보던 기억을 모두 떠올리게 했다. 신비로운 무늬라고 말하기엔 징그러웠던 그 무늬가 오랜시간 어미로 지내온 이후에는 그저, 자신을 살릴 수 있게 설계된 아름다운 생태계의 진리임을 겸허히 깨닫는다.
이 책을 분명 언젠가 읽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목이 그때도 여전히 밤의 공작새였는지는 가물거린다. 헤르만 헤세가 저자였던 것도 잊혀지고 다만 스토리만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소년이 나비를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소중하고 깨끗해서 숨결까지도 느껴지는 그 묘사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는데, 그 표현을 다시 만나게 된다.
"나비가 햇빛 속에서 꽃자루 위에 앉아 알록달록한 낼개를 마치 숨 쉬듯이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때, 난 그것을 잡고 싶은 욕망에 가득차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채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갔어. 그러다 나비의 반짝이는 빛깔, 수정처럼 투명한 날개 혈관, 더듬이에 난 미세한 갈색 털까지 모두 보고 나면, 부드러운 기쁨과 거친 욕망이 뒤섞인 긴장과 환희를 느꼈지. 그건 내가 살아가면서 거의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나비를 향한 소년의 순수한 열망이, 숨소리 조차 느껴지지 않는 몰입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갖고 싶고 얼마나 소중한지가 가슴 깊게 파고든다. 그리고, 소년은 에밀이라는 친구가 공작나방을 채집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천적이 공격하려 하면 접고 있던 앞날개를 펼쳐 아름다운 뒷날개를 보여주는데, 그 때 뒷날개의 크고 환한 눈이 독특한데, 이 특이한 나방을 한번만 보고싶었던 소년.
한번만 보고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소년은 결국 나비를 훔치게 되고 양심이 깨어나고 두려워 죄책감에 용서를 빌지만, 이미 나비를 손상시켰다는 사실은 되돌릴 수 없게 된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한번 망가뜨린 것은 결코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러고는 나비를 꺼내, 하나씩 손가락으로 짓이겨 가루로 만들어 버렸어."
잔인한 이 문장앞에서 나도 모르게 헉 하고 눈물이 났던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이 책을 이렇게 다시 만나니 눈물이 나려 한다. 이 처절한 잘못, 그리고 절망, 자신이 그토록 아끼며 수집했던 보물 같은 수집품을 모두 부수는 행위가 나는 왜그렇게 슬펐을까? 잘못을 했으면 당연하지! 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에밀에게 용서받지 못한 채 돌아와 자신의 나비를 망가뜨리며 형체 없는 가루가 되는 나비를 바라보는 소년.
순수함 역시 그 순간 바스라졌고, 이런 아픔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을 바라본다. 어쩌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알을 깨고 나와야만 깨어날 수 있듯이, 한 소년이 성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상실과 자아 붕괴가 아팠다. 하지만, 이만치 나이가 든 어른이 되고나니 안다. 이런 아픈 깨어남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소년에게 나비였던 밤의 공작새, 과연 현재의 내게 밤의 공작새는 무엇일까? 내 주머니 안에 짓이겨버린 나비가 들어있지는 않은지, 나 안의 이기심과 수치와 직면할 수 있는지, 여전히 그 과정은 나이가 먹어서도 어렵지만 다시한번 이 그림책 소설을 통해 되돌아 보게 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