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어라 - 헤르만 헤세 청춘소설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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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소설 세 가지를 담은 <스스로 깨어라> 책은 웅장하리만큼 힘있어 보이는 날개를 표지로 담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날개가 나에게 달릴 것 같은 상상을 해보며, 마흔중순이 넘은 이 나이에 다시만나는 소설 세 편이 반갑기만 하다. 책에는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그리고 싯다르타의 세 편이 실려있다. 책을 다 읽은 후, 다른 독자들에게 책에 실린 이 순서대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이유는 리뷰를 하며 차차 설명하겠다.

사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어린 시절, 별로 좋아하는 소설이 아니었다. 당시 십대였던 나는 주인공 한스의 삶이 배경이 독일임에도 입시 경쟁 지옥 안에 갇힌 대한민국 십대들과 닮아있음에 당시에도 놀랐던 기억이 생생했고, 마지막이 죽음으로 끝나는 한스의 비극이 마음아파 애써 외면했던 소설이었다.

데미안은 그에 반해 알에서 깨어나고 싶어 발버둥치던 마흔 초반 무렵, 일부러 다시 찾아 읽은 책으로서 엄마로서 그동안의 내 이름 석자로 지내던 삶을 벗어나, 내 안의 나를 찾지 못해 혼란스럽던 내가, 다시 새롭게 깨어날 수 있게 큰 영감을 준 책이었다.

싯다르타는 사실 그동안 접해보지 못해 이번에 처음 읽은 소설인데, 우와! 이 책 왜 몰랐나 싶을 정도로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정말 무쏘의 뿔처럼 나아가는 주인공 싯다르타에가 반해버렸다. 이런 어마어마한 소설을 왜 여짓 나는 몰랐던가, 그리고 이렇게 만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렇다면, 이번 <스스로 깨어라> 책은 헤세의 소설 세 편을 담아 놓았기에 리뷰를 어떤 형식으로 하면 좋을까 먼저 고민해 본다. 가장 편하기로는 세 편의 소설을 각각 리뷰하는 것일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헤세의 작품 중 출판사에서 유독 이 세가지를 그것도 이런 순서로 배치해 놓음에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책의 마지막에 헤세의 연보가 나와있을 뿐 작가에 관한 다른 이야기는 없었지만, 소설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약간의 작가 리서치를 해본 헤세의 삶과 같이 연결하여 인생이라는 깨달음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도록 하겠다.

먼저, 수레바퀴 아래서.

헤세의 삶과 너무다 닮아있다는 이 소설은 주인공 한스가 집안의 기대와 선생님의 기대, 온 동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신학교에 입학함으로써 시들어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헤르만 헤세 본인이 독일 남부의 선교사의 아들로 실제 수도원학교에 입학하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결국 시인이 되고 싶어 도망쳐 나온 이력을 생각할 때, 헤세는 어쩌면 한스라는 인물을 통해 한번 더 살고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외부의 권위, 주변의 기대 따위에 나의 기대와 잘함과 착함이 모두 맞춰질 때 이루어지는 비극을 바라본다. 착한 엄마가 되서 다시 읽으며 반짝이던 한스의 시절, 그가 좋아했던 낙시와 오감열어 맞이한 자연을 서술한 앞 부분이 결론을 알고 읽어 그런가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났다.아이신드롬, K장녀신드롬, 우등생강박증 이 모든 단어가 결국 맞춰지는데, 한스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던 소설이기에 솔직히 나의 십대 때, 이 책을 읽고 너무 우울해져서 다시는 안읽겠다 속으로 선언했으며, 누가 이딴걸 필독서로 넣었냐며 혼자 열폭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필독서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당시 나는 철없고 어리고 시야가 좁아 몰랐으나, 이런 깨어나지 못한 채 짓눌리는 삶의 위험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깨어나야만 한다고 이런 비극을 막아야만 한다고 서막으로 이 소설을 담아둔 것이 아닐까 독자로서 추측해본다.

그러면서 두번째 소설인 데미안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 유명한 문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를 다시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인생의 위기 순간마다 데미안이라는 인물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난다. 두 세계를 만날 때면 조마조마하며, 이만치 나이가 들어 보니 정말 책 속의 말마따라 신기하고 이상하게도 두 세계의 경계는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깝게 있는 전혀 다른 두 세계. 그리고 싱클레어의 방황을 바라보며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데미안. 그는 결국 자신은 떠난다고 선언하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때는 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봐. 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p.447> 결국 자기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인도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나와 자신을 바라보기를, 그럴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작가 연보를 읽다보니, 외부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헤세는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다가 독일에서 비국민 취급을 당한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헤세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아내도 정신분열증으로 입원하고 막내 아들이 중병에 걸린다. 이런 힘든 시기에 융의 제자인 J.B랑과 정신치료를 시작하였고, 이 경험이 데미안 집필에 영향을 주었다 한다.

조심스럽게 싱클레어에게 큰 도움을 준 데미안이 어쩌면 그런 의미이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해도 괜찮다, 그렇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완전히 네 삶의 주인이 되어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깨어 인도자가 되야한다,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늙고 읽으니 그 점이 젊어 읽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관전 포인트였다.

마지막으로 싯다르타. 우와, 이책은 무엇! 수레바퀴 아래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아의 비극을 만났고, 데미안에서 결국 자기 스스로가 인도자가 되야함을 알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나를 찾아 나아가야할까? 진정한 깨달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결국에 앞으로 나아가며 삶을 찾아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싯다르타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엄친아다, 인도에서 높은 계급인 브라만의 아들이고, 잘생기고, 아름답고, 총명하고 해서 모두의 기대와 사랑을 받으나 싯다르타 본인은 절대적 진리를 찾아 결국 아버지를 떠나 승려가 되겠다고 친구 고빈다와 길을 떠난다. 고타마를 만나며 진정 깨달은자의 모습을 알아채면서도 결국 깨달음은 스스로가 얻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르침을 받지 않고,속세로 향하는 싯다르타. 그곳에서 카밀라라는 여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장사를 배우기도 하며 현실 세계 속 가각을 경험한다. 싯다르타는 결국 직접 경험과 자기 스스로가 깨달아야함을 알고 아버지로 시작하여 친구 고빈다 여인 카밀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마저도 떠나가는데, "아들이 생겨 행복과 만족을 얻은 대신, 괴로움과 걱정이 함께 자라났다는 것을"<p.574>특히 아들을 떠날 때의 번민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강물에서 바라본 자신의 얼굴에서 느껴진 싯다르타 본인의 아버지 얼굴을 보며, 고행자들을 따라가게 해달라 조른 젊은 날의 자신과 그 뒤에 겪었을 아버지의 외로움, 이 어처구니 없는 운명의 순환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이 머물었다.

늘 조용히 들어주며 수행을 도와준 바스데바 마저도 떠나고 강물에서 결국 모든 시간은 하나이며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하나의 화음임을 깨닫는 싯다르타에게 마지막에 고빈다가 찾아오고,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모습에서 완성된 자의 광휘를 보게 된다. 결국 지금 이 순간이 영원임이 주는 평화에서 나 역시 큰 위로를 받는다. 또한 우리가 섣불리 저지르는 이원성을 하나의 전체안에서 극복하고 싶어진다. 어쨌으나 깨달음의 완성은 결국 싯다르타처럼 방황하는 과정 안에서 하나하나 찾아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 나아가야할 것이고, 그 길은 누가 대신 가줄 수 없는 것임을 안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가장 마지막에 실려 마침표를 찍은 것이 아닐까?

싯다르타에서 발견한 시간의 개념안에서 바라본 청춘은 사실 어쩌면 지나간 시절이 아닐지 모른다. 결국 우리 삶안에서 다시고 찾아오고 다시고 흘러가며 강물처럼 흐르는 거대한 순환의 하나겠지. 그렇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야겠다.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만나게 될 진정한 자유를 기대해본다.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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