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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 밑줄 긋는 시사 작가의 생계형 글쓰기
김현정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3월
평점 :
나
늘 글이 쓰고 싶었다. 쓰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났다. 마음 속에 무언가 이글이글 끓는데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앉아서 글을 쓴 적이 없었다. 놀이터 바닥에 엎드려 무선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이들이 잘 놀면 급한 대로 무엇이든 써서 남겼다. 종이가 없으면 휴지에 썼다. 야채를 자르는 중간,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우는 중간에도 메모지를 옆에 두고 썼다. 길을 걸을 때는 핸드폰 녹음 기능을 이용해 말로 썼다. 아이들을 재울 때는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 거울에 핸드폰 조명을 반사시켜 글을 썼다.
글은 늘 조각이었다. 이어질 수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앉아서 쓸 공간도 없었다. 사람들은 물었다.
"도대체 뭘 하는데 그래?"대답 할 수 없었다.
나는 글을 쓰긴 했지만 브런치라고 불리는 에세이 플랫폼에서나 작가로 불리지 실제 책을 출판한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prompt와 모범 예문을 담아주는 글을 써 돈을 벌었지만, 그 글은 결국 나의 글이라 불리지 못하는 글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쓰는 것 보다 쓰지 못하는 것이 괴로워 글을 쓰지만, 내가 발행한 글이 주요 포탈 메인에 오를때면 두려워 숨기 바빴다.
글쓰기에 간절한 이런 마음은 유독 글쓰기와 관련한 책들을 찾아 읽게 만든다. JTBC 앵커 브리핑과 KBS 뉴스9 메인 작가가 전해주는 방송작가의 삶, 그리고 살아있는 생생한 글의 이야기를 <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책을 통해 만났다.
" 선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해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을 써내지 못한다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쓴다 해도 글은 매일같이 퇴짜를 맞고 지적당하고 때론 혹독하게 평가받는다. 누군가는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행간을 읽어내고, 인터넷 댓글 창엔 글 쓴 사람을 상처 입히는 비평이 줄지어 달린다. 때론 납득이 가지 않는 시청률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작가에게 쏟아지기도 한다. 버티고 견뎌야 할 일들이 겹겹이 쌓였는데, 섣부른 자의식과 잘난척은 스스로를 망칠 수 있다는 것. 내가 쓴 글에 정말 결함이 없는지, 선배와 동료를 대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없는지, 무엇보다 잘 참아냈는지 먼저 돌아보면 좋겠다는 조언이었다."<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p.42>
책을 통해 생생하게 방송작가들의 삶은 어떠할까? 어떻게 하면 글을 조금 더 잘 쓸까? 하는 궁금증으로 시작했던 나는 책을 읽어가며 글을 대하는 작가의 '겸손한 태도'와 '끈기 있게 버텨내고, 열정을 담아 나아가는 마음 가짐'에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매일 매일의 자기안의 comfort zone을 넘어드는 그 글쓰기가 넓혀주는 세상과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지면으로 된 신문을 읽은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주부가 된 나는 제대로 신문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신문이 서로 접근 자체를 달리하여 같은 소재와 같은 장면을 다르게 풀어낸 시도, 이 촘촘하게 다른 행간과 미세한 결의 차이를 잘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스토리텔러의 기본자세임을 배운다.
궁금한 마음에 당장 도서관에 가서 가장 첫 면의 기사제목을 훑어보았다. 2025년 3월 7일자 신문과 제목이다. 경향신문: 민가에 폭탄 날벼락, 군 100분 뒤에야 오폭, 국민일보: 어이없는 전투기 오폭, 포천 민가 날벼락, 매일 경제: 민가에 폭탄 투하, 얼빠진 군, 조선일보: 민가에 폭격 나사빠진 군, 중앙 일보: 민가덮친 폭탄 8발, 군 수뇌부, 30분간 몰랐다, 한겨레: 민가에 전투가 오폭, 15명 중경상 초유의 사태".
신문이라면 가능한 다른 세상을 엿보고 논리적으로 싸울 수 있는 기회, 이번 기회에 조금씩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 한 걸음 더 다가가보면 어떨까? 다짐한다.
"방송작가의 글은 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었다. 두 발과 귀로, 입으로 또 가슴으로 써야했다. 매일 새로운 이슈와 출연자를 찾아내 방송에 출연하도록 만들어야 했고, 이젠 그만 나오겠다는 고정 출연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있다. (중략) 화면에 어떤 영상과 사진이 올라가면 좋을지 글자 크기와 모양 하나하나를 조율하고, 때론 음악도 고른다. 앵커의 동선과 움직임을 초단위로 계산해서 문장의 숨을 다듬어야 한다. 오감 아니 육감을 모두 동원해 그리듯 말을 거는 종합예술이 방송원고다." <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p,12>
온 힘을 다해 견디고, 꾸준히, 다르게 써온 글쓰기의 자세, 이 책을 통해 글쓰는 사람의 진중한 태도와 한 발 더 깊이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작가의 진지함, 그리고 진심어린 시선을 배우며, 보잘것 없는 나의 글쓰기에도 작은 용기의 씨앗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