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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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가서 만나는 유물, 그저 역사 수업의 일환인 체험으로 보고서를 쓰느라 바빴던 시기를 지나고, 세상 만물의 역사의 산 증거를 만나며 역사 너머의 서사를 상상해 보느라 뭉클한 시기를 지나고, "이건 어디에서 왔어? ", "누가 시작한 거야?"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는 어린이를 키우는 중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나의 기억 너머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을 법한 질문들, 그러나, 사느라 바빠 꺼내보지 못한 질문들을 아이를 키우며 다시금 만나게 된다.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보며 유물을 탐구하는 고고학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막연히 고고학자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던 시절을 건너, 실제 고고학자가 전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의 저자 강인욱 교수님은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한국 고대사 고고학 연구소 소장이다. 유라시아와 고조선의 고고학을 연구하며 고고학의 진정한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삶의 커다란 축인 '먹고, 즐기고, 욕망하고, 죽음을 대하는' 모습을 다룬다. 고고학 유물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과거의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았고, 결국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우리가 지나온 과거'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1장은 '먹고'에 해당하는 잔치(Party)로 이루어져 있다. 요리하고 먹고 마시는 것, 삶에 있어 먹을 것을 빼놓고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 막걸리, 소주, 김치, 삼겹살, 소고기, 닭, 상어 고기, 해장국의 챕터로 이루어진 재미있는 1장.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 특히 '상어 고기' 부분이 인상에 남았다. 2,000년을 이어온 우리나라의 제사 음식이라는 상어 고기. 비싼 요리 중 하나로 어렴풋이 자리 잡은 상어는 여전히 내게는 낯선 영역, 그런 상어가 오랜 시간 제사상에 올라오는 요리였다니! 상상조차 하기가 어렵다. 경북 경산시에서 발견된 상어 뼈, 제법 신분이 높은 족장을 묻은 고분에는 상어 뼈가 통째로 발견되기도 한다고 한다. 무덤에 넣는 음식에는 저승길을 갈 때 배고프지 말고, 먼저 죽어서 저승에 가 있는 조상과 함께 잔치를 하라는 의미가 있다. 죽음을 통해 남은 자들을 결속하게 하는 인간의 마음, 추모와 기억을 담은 그 본질이 애달프다.

2장은 놀이(Play)에 관한 챕터다. 인간의 삶에 즐거움이 빠질 수 없다. 놀이, 고인돌, 씨름, 축구, 여행, 낙서, 개 고양이 등을 담은 재미있는 고고학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그중에서 요즘 우리 집 아들래미의 최고 관심사 축구의 고고학적 관점을 빼놓을 수 없었다. 아들래미가 어디에선가 듣고는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엄마, 그거 알아? 축구가 화합의 스포츠잖아? 근데 예전에 축구 때문에 전쟁이 난 적도 있었대." 전혀 금시초문이었던 나는 나중에 엄마가 한번 찾아볼게,라고 말해놓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책에서 만난 축구,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공놀이는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야 문명에서의 공놀이는 경기에서 지면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데스 매치'라고 불리기도 했다. 공은 태양을 상징하고, 공을 주고받는 행위는 빛과 어둠의 세계를 은유한다. 실크로드에서 이루어진 공놀이는 무덤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추측해 보건대, 마상 공놀이 형태였을 것이다. 현대 축구의 원형은 중국에서 시작된 축국, 네모난 경기장에서 동그란 공을 차는 천원지방(하늘은 둥글도 땅은 모나다)의 철학을 구현한 놀이다. 현대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전쟁 중에 베어버린 덴마크 왕자의 머리로 축구를 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렇듯 다양한 지역과 환경에 따라 경기 방식의 변주를 보이며 오랜 명을 이어간 축구,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경기, 축구 경기 역시 둥근 공처럼 둥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희망하는 경기이기도 하다.

3장, 욕망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명품(Prestige)에 관한 챕터, 부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석기, 실크, 황금, 신라 금관, 인삼, 기후와 유물, 도굴, 모방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는 <기후와 유물> 부분,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에 대해서는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지만, 기후변화가 문화유산에 미치는 영향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편협한 나의 사고에 개탄하게 된 챕터이기도 하다.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화려한 황금 유물, 양탄자, 인간 미라 등이 쏟아지는데, 이는 영구 동경대에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해발 2천~3천 미터에 달하는 고원지역에 무덤을 파서 시신을 묻고, 커다란 돌로 태양열을 차단한 후, 눈비가 스며든 무덤은 얼음으로 꽉 차 거대한 냉동고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얼음이 녹아버리며 지역 문화유산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상황이 되었다. 말없이 사라지는 유물들은 인류 역사를 밝혀줄 증거와 함께 영원히 수면에 오르지 못한다. 안타까운 이 현실을 바라보며, 기후 위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마지막 장은 죽음을 대하고 있다. 영원(Permanence)를 다룬 4장에서는 벽화, 추모, 미라, 발굴 괴담, 마스크, 문신, 점복, 메신저의 주제로 고고학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지난달에 허먼 나룰라의 <우리는 가상 세계로 간다>라는 책을 읽었다. 메타버스에 관한 인문학적인 관점을 다룬 이 책에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다른 세계를 만들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가상세계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의 기원>에서 만난 고구려 벽화에서 1,500년 전 고구려인들이 구현한 메타버스를 보게 된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지상을 의미하는 벽에는 고구려인들의 실제 생활상을 표현하고, 천장으로 올라가면서 하늘의 별과 신화적인 요소를 섞어 표현한다. 현실과 판타지가 어우러진 가상 현실의 배경과 비슷하다.

반백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유물과 유적을 만나기를 꿈꾼다는 저자의 말을 마음에 담는다. 과거를 발굴하며 새로이 써질 기존의 역사, 과거를 발굴하지만 그 목적은 결코 과거에 머물 수 없는 고고학의 아름다운 매력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었다. 답사라는 것이 주는 지루함에 젖었던 학창 시절을 보낸 내가 미리 이 책을 만났더라면 조금 더 새로운 시선을 갖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챕터마다 꼼꼼히 밑줄을 긋고, 향후 아이들과 함께 할 답사에서 조금이라도 흥미진진한 고고학적 이야기들을 풀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새로운 기원을 찾는 과정은 즐겁다. 어쩌면 그렇기에 저자는 프롤로그의 소제목을 '죽어 있는 유물이 들려주는 살아 있는 이야기'라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자모 카페 서평단으로 활동하며 책을 지원받아 읽은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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