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하는 미술관 -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
송정희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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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하는 미술관

1. 들어가며

책을 진작에 읽었으나 서평을 쓰기 위하여 기다려야 했다. 서평을 쓰려 앉으면 엉엉 눈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매혹하는 미술관>에서 저자 송정희가 보여준 12명의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의 낯선 세계. 이 곳에서 헤어나오기까지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고요해 질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실패했다. 그림을 볼 때마다 새롭게 올라오는 감정 깊은 곳의 이야기들은 외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이기에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자가 이 책에서 초대한 세계일 수 있겠다 싶다. 나는 어쩌면 책을 리뷰하며 단정하고 객관적인 어조를 유지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 포스팅은 서평이라는 말보다는 독서에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이, 그림이, 그리고 예술가의 삶이 나의 삶을 관통하여 만나는 지점에 오래도록 머물며 쓰고 싶다.

그렇게 출판사나 서평단 측에서 원하는 서평과는 어쩌면 조금 다른, 변주된 서평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2. 내게는 낯선 아름다움! 조지아 오키프



매혹하는 미술관, 송정희

언제였더라...조지아 오키프의 꽃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녀의 작품은 나에게 두 번의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 첫번째는 꽃이 이토록 여러겹의 우주를 포함하고 있는지 미쳐 몰랐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게는 그저 하나의 덩어리, 어쩌면 어린 시절 크레파스를 손에 꼭 쥐고 동그라미 하나 그린 후 꽃잎을 그려 두가지 색으로 만들어낸 딱 그 덩어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받은 충격은 이 꽃을 보고 사람들이 여성의 생식기를 연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생식기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구조로 몸 안 깊숙히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이게 왜 닮은거야? 그리고, 자신의 깊숙한 곳 결코 보지 못하는 어떤 지형을 열어본 충격이었다.

조지아 오키프는 "그저 꽃을 확대해서 그렸을 뿐"이라 말하였고,멀리서 보이는 꽃의 외형이 아닌, 가까이 크게 보아야만 열리는 꽃의 내면 세계를 그려냈다.

낯선 아름다움! 그리고 충격!

내게는 조지아 오키프가 이 두가지 단어로 표현되던 시절이었다.

"오키프는 대상에 바짝 다가가 오래 들여다보면 그 대상의 구체적 형상은 점차 사라지다가 추상에 이르러 대상의 본질만 남는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매혹하는 미술관, 조지아 오키프 편, p.18>

새로운 풍경을 창조하기보다는 그 풍경을 새롭게 편집했던 그녀를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이 사람들, 그리고 이 풍경을 나는 어떻게 편집하고 있을까?

3. 화려한 한풀이, 천경자



매혹하는 미술관, 송정희

또 한명의 친숙한 작가는 바로 천경자.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2004년 산 도록을 옆에 두며 책을 읽었다. 한풀이 과정과도 비슷한 그녀의 그림. '생태'에서 표현한 저항과 열기가 가득한 뱀. 허물을 벗지 못하면 그 안에 갇혀 죽듯, 천경자 자신도 허물을 벗고 새로운 자신이 되기를 바랬던...그녀의 슬픔을 이겨낼 수 있게 한 아름다운 작품들 앞에서 가슴이 요동친다.

"화려할수록 슬펐다." <매혹하는 미술관, 천경자 편,p 92>

이 한 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4. 칼로 깊은 슬픔이 도려내질까? 케테 콜비츠



매혹하는 미술관

낯선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 멈추어 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울렁이는 마음으로 가만히 그림을 본다. 흡혈귀처럼 아이의 가슴 모든 피를 빨아들일 것 같은 어머니의 절규, 그리고, 그녀 자신이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아들, 전쟁과 예술로 맞써 싸운 그녀.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분노의 질감을 판화의 투박한 칼맛으로 새기며 동판화, 석판화, 목판화 작품들을 남겼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는 그녀에게 판화는 가장 적절한 매체였다." <매혹하는 미술관, 케테 콜비츠 편, p.263>

그녀는 칼로 하나하나 그으며, 사무친 그 아픔을 도려낼 수 있었을까? '미술이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다'라고 말하였다는 그녀의 예술,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고 인간과 세상을 이해한 그녀의 예술이 전해주는 강한 힘이 느껴진다. 그 무엇도 전쟁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예술로 실천하는 지성을 보여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5. 치유의 예술, 루이스 부르주아



매혹하는 미술관

그러고보니 나는 어린 시절에도 거미를 그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게도 '거미' 하면 응당 징그러워 피하고 싶은 동물, 그러나, 자연에서 만난 거미줄은 황홀하기 그지 없는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거미줄, 비가 온 후에 물방울이 맺힌 거미줄은 아름답다. 나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때, 프랑스계 미술인 '루이스 부르주아'는 거미를 통하여 어머니를 오마주한다.

징그러운 외모, 독을 품은 거미, 그러나 누구보다 강한 모성애로 알을 보호하고 먹이가 없을 때, 기꺼이 자신의 몸을 새끼에게 내어준다. 거미줄은 약하지만 강하고, 가늘지만 질기다. 두렵고 불운한 어린시절을 지내온 루이스 부르주아에게 거미는 어머니와 같았다. 거미 작업을 하며 과거의 기억을 붙들며 지낸 치유의 시간들, 그녀는 예술을 통한 치유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증명한다.고통이 삶의 일부분이 되고 그 시간을 관통한 그녀가 주는 메시지는 실로 가슴을 울린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삶은 어딘가에 신비로움을 숨기고 있다는 믿음. 아마도 고통에 마법을 걸어 신비를 찾아내는 존재가 바로 예술가일 것이다."<매혹하는 미술관, 루이스 부르주아 편, p.292>

6. 내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중국 화가 '판위량'



매혹하는 미술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이름 '판위량'. 20세기 중국에서 누드화를 그린다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를 향한 항거, 그녀는 예술가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에 저항했다.

"대자연의 세계에서 인체는 흠잡을 데 없는 완전무결한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풍부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매혹하는 미술관, 판위량 편, p.177>

판위량의 그림을 보며, 나는 내 자신이 아름다운 fit에 관한 강박에서 해방되던 한 때가 떠올랐다. 나는 늘상 작고 호리호리한 몸매였는데 아이둘을 낳고 기르며 불현듯 아름다운 복근을 만들어 가꾸는 재미에 들었었다. 복근이 사라질까 두려워 식단을 조절하며 열심히 운동을 하던 시간들 안에서 어느 순간 나의 아이가 쓰러졌다. 한치 앞을 모르며 병원 생활을 하던 시절을 지나왔다. 그 이후 무려 7킬로의 살이 쪘고, 예전 옷들이 맞지 않아 원피스를 제외한 모든 옷은 입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차라리 큰 옷을 사입은이후 엄청난 해방감이 찾아왔다. 손 가득 잡히는 뱃살도, 퉁퉁한 팔둑 살도, 드럼통처럼 되어버린 몸매가 싫지 않다. 오히려 잔병치레가 훨씬 적어지고,더 활력이 났다. 다만, 무게가 급작스레 증가한 이후,몸이 무거워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발아한 인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누드를 통해 실현하고 싶었다"<p.177>​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각인되었던 몸매에 관한 기준을 스스로 끊어버린 이후,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내 자신이 나의 몸과 친해질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니체가 말한 말이 새롭게 들린다.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은 삶에서 가장 바라는 것, 즉 자신을 넘어 창조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p.178>

7.아름답지 않아도 될 권리, 멋진 수잔 발라동



매혹하는 미술관

르누아르의 그림 속 모델인 아름다운 수잔 발라동, 그녀가 모델에서 화가로 탈바꿈하는 순간은 뭉클하다. 자신의 영혼만큼은 자신의 것이라는 그녀의 신념, 그리고 그런 신념이 드러난 두꺼운 검은 선과 생동감 넘치는 색채, 대담한 그녀의 그림이 좋다.

젊고 아름다운 모델로 당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에 담겼던 발라동은 그런 이미지를 모두 깨부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선언한다.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고.

르누아르의 그림 속 발라동과 자신이 그린 자화상의 발라동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에 머물었다.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나! 그 나들은 과연 보는 사람에 따라 어떤 모습일까? 첫째의 엄마로서의 나, 둘째의 엄마로서의 나, 딸로서의 나, 작업자로서의 나 등 다양한 옷을 입은 내가 존재할 때, 내가 원하는 상이 아닌, 실제 아무 수식어가 붙지 않은 '나'는 누구일까?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불러일으킨 챕터이기도 하다.

8. 내가 듣는 목소리는 무슨 색일까? 키키



매혹하는 미술관

"키키는 목마른 보헤미안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그 이상이었다. 그녀도 자신만의 공간에서는 혼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였다. 다만, 당시 다른 예술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번도 아틀리에를 갖지 못한 화가였고, 작가의 방을 가져보지 못한 작가였다는 사실이다" <p.125>

헤밍웨이가 서문을 써준 키키의 책은 보헤미안 라이프 스타일을 날것 그대로 생생히 보여준다. 헤밍웨이는 키키의 회고록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논란을 자초하였는데, 그것은 '목소리를 가진 여성'을 강조하였고,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한 여성의 의지를 이야기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이 사회를 살아가며 지켜내기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9. 비운. 아!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카미유 클로델



매혹하는 미술관, 송정희

카미유 클로델의 <성숙의 시대> 작품을 보며 배운 해설은 가히 명언이다. 세월의 흐름과 마주한 인간의 운명을 어찌 이보다 더 정확하게 담을 수 있을까. 무언가를 만지며 찾아가는 감정의 깊은 주체,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형벌이자 축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말 없은 사유, 만지는 사유, 자신의 삶을 걸고 만지며 통찰하는 삶을 조각으로 담아내고, 그 조각을 바라보며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비운이라는 말이 사무쳤을 그녀를 생각해본다. 죽어서도 카미유와 로댕의 작품은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말이다.

10. 행위예술이 무엇인지 알려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매혹하는 미술관, 송정희

내게는 언제나 낯선 영역, 행위 예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예술가가 여기 있다' 와 '리듬0' 등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리듬0에서 보여지는 악의 평범성은, 사유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나는 물건'이라는 그녀의 상황에 총알을 장전한 권총 마저도 등장한 사실은, 수동적인 개체 앞에서 폭력성을 함부로 드러내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 했을 때 처럼 말이다.

엄마가 된 이후, 엄마의 삶을 살며 선과 악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 수 밖에 없었다. 엄마들의 시야가 갈수록 좁아지는 현상을 목격하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한 인간의 무사유로 누군가를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을 엄마들 사이에서 확인 하기도 했다. 타인의 행동을 반면 교사 삼아, 나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돌아보며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도 했다. 큰 그림은 보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일차원적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자라났다.

'저게 무슨 예술이야?' 하며 기웃거리고 넘어갔던 난해하고 알 수 없는 행위 예술에서 용기를 얻는다. 위로를 얻는다. 그녀의 이야기는 몸을 도구로 이용하여 세상의 모든 개념을 구현하고자 노력한 대모임이 분명하다.

11. 마치며

이 책을 처음 접하였을 때 나는 두려웠다. 미술을 알지못하는 미알못 주제에 잘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 안에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예술이 궁금하여 어쩌면 나같은 미알못의 시선으로 읽어내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는 감정을 글로 풀어낼 수 없어 끙끙거리고, 깊은 감정의 정체를 알고 싶어 앓아가며 글을 쓰곤 했다. 그림의 본질도 다르지 않으리라. 창조라는 활동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해 내는 것, 그 모든 과정은 실로 위대하다. 그렇게 태어난 결과물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

<매혹하는 미술관> 책을 통하여 멋지고 아름답고 슬픈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녀들이 탄생시킨 작품속에서 세상의 빛을 발견한다. 비록, 그림은 잘 모르지만 지금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실제로 만난다면 얼마나 의미있을까, 그 때의 전율을 상상해 본다. 영혼을 채워주는 책이었다. 한 챕터씩 아껴 아껴 읽었다.

어느날 훅.하고 나의 삶에 들어온 낯선 세계. 이 세계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


*소제목은 제가 책리뷰를 위해 다시 지은 제목이며, 책 속의 소제목과는 다릅니다.

*미자모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후기입니다.

*책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세상에, 이런 책을 읽으며 눈물을 뚝뚝 흘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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