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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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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는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작가가 인도 출생이니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을 묘사했을까? '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두 번째 장 콰브가의 초반부까지 읽은 후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히즈라로서의 안줌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후에는, 이 책이 모든 인도인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은 상당히 점층적으로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2장 <콰브가> 까지는 안줌과 가족들, 그리고 히즈라 집단과 사담에 대해 묘사한다면 7장 <집주인> 부터는 틸로와 무사, 나가, 비플랍이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소설에 등장한다. 그리고 두 집단은 4장 <아자드 바르티야 박사>라는 인물을 매개로 연결된다. 4장에서 잠깐 등장하는 여인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며 마지막 장까지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수많은 인물들을 촘촘히 연결해둔 작가의 집필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안줌을 시작으로 각 장에서 인물들의 사연을 쌓아나가며 새로운 인물들을 한명씩 등장시켜, 그들의 연결성을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식이다. 독자들이 계속 품었던 의문은 이내 사연의 중간에 해결된다.

 

#2. 콰브가

 

주인공 안줌의 삶은, 두 번의 선택으로 나뉜다. ‘꿈의 집콰브가에 들어간 순간과, 콰브가에서 나온 순간. 그녀의 첫 선택인 콰브가는 억눌린 여성성을 해방하고 자아실현을 하는 공간이었다. 안줌은 여러 신문에 실릴 정도로 매력적인 히즈라가 되었고, 자이나브라는 생명을 만나 엄마로써의 역할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그러나, 구자라트 폭동은 안줌의 삶에서 큰 전환점이 된다. 책의 83p에서, 그녀는 거짓된 행복에 대한 반발심을 느끼며, 첫 번째 선택의 결과물들인 여러 다큐멘터리와 책, 즉 성공한 히즈라로서의 삶을 태우게 된다. 폭동에서 마주한 충격적인 인도의 현실에 다가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녀의 두 번째 선택으로 이 소설은 한층 폭넓은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안줌이 콰브가라는 알을 깨고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순간, 책을 읽는 독자의 세계관 역시 넓어지게 된다. 지금껏 주인공 개인의 성취에 집중했다면, 이제 전체 인도인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함께 여행을 한다. 그리고 이곳은 만남과 이별의 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줌의 게스트하우스는 조금 특이하다. 갈 곳 없는 자들이 이곳 잔나트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누구보다 환영받는 손님이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다. 무덤이 묻힌 자들의 사연으로 시작해, 작가는 이맘 지아우딘’, ‘사담 후세인’ 등 산 자들의 사연으로 스토리를 풍성하게 이어나간다.

 히즈라 안줌에 이어 소설은 차마르 사담 후세인을 조명한다. 그의 사연에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출생으로 차별받는 불가촉천민의 삶. 하지만 사담은 복수를 계획하며 결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안줌은 죽기를 기다렸다. 사담은 죽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마일 떨어진 소란스러운 숲에서는 한 아기가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p. 128)

 

#3. 탄생

 

모든 성장은 양면성을 갖기 마련이다. 인도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장으로 새로운 인도가 탄생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었다. 그들은 델리 밖으로 밀려났고, 잔타르만타르 광장으로 시위를 하러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 투쟁의 한가운데 아이가 버려져 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아이가..?’ 해당 부분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성서에서도 흔히 등장하듯 아이의 탄생은, 보통 목동들의 수호를 받거나, 오색 구름이 땅을 덮는 등 신비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아이, 다른 의미에서 신비롭다. 이해관계가 다른 어른들의 싸움터에 등장하다니.

아이와 관련된 논쟁이 시작될 때, 사람들은 잠시 시위를 멈추고 집중한다. 그리고 매춘부의 노래에, 하나가 된다.

p. 168 “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줄 거라는, 누군가는 듣고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그 곳에 있었다. 누군가는 그들의 말을 들어줄 거란 믿음 때문에.”

정작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정치인들 없이 막연한 믿음만으로 버텨 나가는 소외된 자들을 보며, 성장 중심의 우리 사회가 외면하는 많은 목소리들이 스쳐 지나갔다.

 

논쟁에 사람들이 정신이 팔린 사이, 정작 아이는 사라지게 된다.

 

#7. 집주인

 

소설의 배경이 잔니트 게스트하우스에서 카슈미르로 잠시 옮겨간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분쟁이 조명되기 시작한다. 틸로, 무사, 나가, 그리고 비플랍. 연극을 함께하던 대학 시절 친구들은 카슈미르에서 적으로 만난다. 정보국 부지부장 비플랍은 굴레즈 대장 무사와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카슈미르에서, 인도 정부는 이슬람 무장단체를 역이용한다. 거짓보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p.235 “우리의 봉쇄 수색 작전은 늘 대대적이였고, 우리가 체포한 인물은 모두 공포의대상이었으며, ‘A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생포한 자들로부터 무기를 회수하는 건 어김없이 전쟁같았다.”

카슈미르 분쟁을 읽으며, 정치적 야욕이 종교의 탈을 쓸 때 얼마나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할 수 있는지 느꼈고, 동시에 두려워졌다.

 

상위 카스트이며, 브라만 계급 여성과 결혼한 정보국 소속 비플랍의 삶은 겉보기엔 조국에 충성하는, 성공한 고위급 관료이다. 마지막 장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채로 등장한다. 가족도, 직업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너희가 파괴하고 있는 건 너희들 자신이야라는 무사의 말처럼, 비플랍은 선량한 카슈미르 인들까지 학살하는 정부 밑에서 모든 걸 잃어버렸다.

 

#9. 미스 제빈 1세의 때 이른 죽음

 

인도 정부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이, 선량한 카슈미르인인 아내와 딸의 목숨을 앗아간 순간 무사는 굴레즈 대장이 되었다. p. 452 “카슈미르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척하는 죽은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 아자디를 얻고,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카슈미르인을 위해 무사는 끝까지 저항한다. 종교적 갈등에서 비롯된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보며, 영화 호텔 뭄바이가 떠올랐다.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를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무슬림 과격단체들은 무차별 테러를 자행할 때마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이라고 읊조린다. 종교를 앞세워 시민들을 학살하는 것이, 진정 우리가 믿는 의 뜻인 걸까?

 

#10. 지복의 성자

수많은 성자들 중, 안줌은 하즈라트 사르마드에 의지했다. 지복의 성자이자 위로받지 못한 자들의 성인, 하즈라트 사르마드. 이제 안줌의 잔나트 게스트하우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공간이 되었다. 몸속에 카슈미르 종교분쟁의 아픔을 품은 틸로, 그리고 윤간당한 공산주의자 레바티와 딸 우다야까지. 소설 속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는 종교, 정치, 계급 그리고 성별에 관계 없이, 모든 인도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11. 귀 키욤

p. 573

그조차도 결국엔 모든 게 다 괜찮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하니까. 왜냐하면 미스 제빈, 미스 우다야 제빈이 왔으니까.”

어른들의 싸움터에 등장했던,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던 아이. 미스 우다야 제빈, 작가는 일출을 뜻하는 우다야로, 언젠가 밝게 떠오를 인도의 미래를 우리에게 선물해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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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 동굴벽화에서 고대종교까지
전호태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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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건국설화와 불교, 유교, 도교 등 여러 사상에 대한 책은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다. 대부분 국사시간에 배운 내용이기도 했고, 부자간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편하게 읽혔다. 전체적인 흐름에 집중해 읽다 보니, 건국신화와 신의 탄생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형상화하는 인간의 능력에 의해 ‘신’ 이 탄생했고, 각 나라에서는 건국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불교, 유교, 도교 역시 통치와 계급사회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편, 신이라는 개념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정의되었다고 생각하니 ‘믿음’, ‘신앙’ 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 장, 16장은 책에서 전반적으로 다룬 ‘생각’ 즉 사상, 종교, 이념이 결국 삶과 죽음 사이에서 존재함을 알리며 마무리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갈등은 어떻게 풀어나가는 게 좋은가’ 등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지만,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모든 내용이 어떻게든 현재의 생을 살아나가기 위한 선조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나에게 와닿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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