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 율리와 타쿠의 89일 그림일기
배율.진유탁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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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 배율, 전유탁

: 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여행을 준비할 때에 가장 설레는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여행계획을 짜는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해외여행의 경우, 비용과 시간적 측면에서 국내 여행보다 쉽게 떠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특히 해외여행 계획을 짜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다. 내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과 경비로 일명 '가성비 좋은' 여행을 다녀와야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이곳까지 가는데...' 라는 생각에 나는 쉴 새 없이 일정들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세운 나의 계획이 잘 실행됐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인생이 아무리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라 할 지라도, 여행까지 왔는데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하지만 야속하게도 여행지에 도착하면 일정을 짤 당시에는 몰랐던 변수들이 항상 존재했고,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언제나 초조했다.

 

 

확실한 게 좋았다. 낯선 곳에서 헤매고 있는 내가 되기 싫었다. 그건 왠지 간지(?)가 안 사니까. 그래서 완벽한 일정 세우기에 매달렸다. 낯선 곳에서 혹여라도 바가지를 쓸까 봐, 길을 잃을 까봐 핸드폰 화면만 바라봤다. 여행지에서는 미리 검색해온 '유명한 커피집'에서 시그니처 커피를 30분 만에 마시고 나왔고, 다음 일정을 향해 쉼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당시엔 계획 한 번 잘 지켰다- 하고 뿌듯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여행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단지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휴대폰 사진첩에 남아 기억될 뿐이다.

 

다들 '좋았다', '멋졌다'고 하는 확실한 것들만 좇던 건, 좋은 것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이고 지내다보니 우연히 보물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계획 강박증이 있는 나에게 필요한 여행은 아마도 율리와 타쿠가 떠난 89일 간의 치앙마이 살이는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여행은 순전히 "치앙마이 가볼래?" 라는 타쿠의 예고없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이 질문에 나는 과연 무슨 대답을 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간 차앙마이에서도 아마 나는 한껏 속도를 내어 걷지는 않았을까.

 

잠깐 머무는 곳, 이곳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박증을 만들어 냈다. 사실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깨달을 때가 더 많은데 말이다. 어둠이 내려앉던 어느 길거리에서 친구와 함께 들어갔던 이름 모를 식당이 내게 그랬다. 생각보다 복잡한 길거리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고, 배가 고팠던 우리는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계획에는 없던 일정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미리 찾아봤던 별점이 다섯 개느니 했던 이전 음식점들 보다 훨씬 맛있고 만족스러웠던 식사였다.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아니 딱히 계획을 짜지 않더라도 여행지가 가지고 있는 냄새를 느끼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건 나의 마음에 달린 것. 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런 곳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일까.

보이지 않는 불편이나 고민도 있을테지만 그런 세상 어디를 가든지 똑같은 걸.

어디에서 지내든 마음의 문제. 자주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말이다.

 

 

 

여행과 관련한 문구 중에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는 특별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네잎클로버라는 행운을 찾기 위해서 곁에 있는 수많은 세 잎 클로버(행복)를 밟아버린다는 말.

율리와 타쿠의 89일 간의 치앙마이 살이. 여행이라는 말보다는 살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던 율리의 이야기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느끼게 되었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무언가, 그건 아마도 낯선 곳에서 발견한 일상의 소중함일 것이다.

 

 

생각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용기내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

떠나오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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