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당연함을 버리다 - 고지마치중학교의 학교개혁 프로젝트
구도 유이치 지음, 정문주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업무 처리를 하는데 있어 비교적 보수적이라고 생각되는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더 보수적이라는 일본. 단순한 것 하나를 변경하는 데에도 굉장히 신중을 기해서 회의를 반복한다고 한다. 잘 바뀌지 않는 만큼 신중하고 섬세한 장점이 있는 반면, 융통성이 부족하고 변화하는 사회에 빨리 대응하지 못할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일본 문화를 알고 있기에 일본 중학교 교장선생님의 저서 ‘학교의 당연함을 버리다’는 제목만 봐도 궁금증이 생겼다.

 구도 유이치 교장선생님은 진보적인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으시다. 지금 현재 교육에 있어서 ‘수단이 목적화 되어 있지 않은가’하는 문제 의식을 가졌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 목적에 맞게 나아가야 하는데, 목적과 상관 없이 오랜 기간 동안 습관적으로 학교에서 행해지는 관습들이 있다. 구도 교장 선생님은 그것을 중간고사, 기말고사 폐지, 숙제 폐지, 고정 담임제 폐지 등으로 정하였는데 또 유의해야 할 것은 이것들 조차도 “꼭 없애야 해!” 하는 관습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학교상황에 맞게 목적을 설정해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학교 관리자로서 할 수 있는 혁신에 주목하고 싶다. 교복 선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학생들과 학부모 등과 한다던지, 학교를 커뮤니티 스쿨로 만든다든지, 교사들의 수업 집중도를 위해 업무 효율성을 추구한다든지, 교사들이 찾은 생활지도 방식을 뇌과학자를 초청해 근거를 만든다던지 하는 것이다. 학교장으로서 학교 혁신을 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하나의 멋진 예시가 되어 귀감이 된다.

 구도 교장이 이 책에 쓴 말들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많다. 아마도 올바른 교육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이 나에게 하는 조언처럼 느껴지는 것일테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는 아래 4가지로 추렸다.

-----------------------------

1.

“사람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어떤 일에 몰두할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럴 때 긴장감도 느끼게 되며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가 생긴다. 반대로 시키는 사람이 세세한 부분까지 다 지시해 버리면, 상대는 머리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만 열심히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재량권과 동시에 책임과 리스크가 같이 주어질 때 비로소 일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관리자는 정말 사소한 하나하나까지도 교장의 결재를 받기 원한다. 일을 하는 데 완벽하지 않을까 불안한 것이다. 완벽하게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실무를 하는 교사를 믿지 못한다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다. 이런 관리자 아래에 있으면 별 생각 없이 일을 해도 되기 때문에 편한 면도 있고, 실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 일이라고 생각되는 ‘오너십’, 일의 혁신, 창의성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점점 시키는 것만 하게 되므로…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따돌림 실태 조사는 '따돌림을 발견하고 대응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 '수단'에 집착한 나머지 조사 결과에 나타난 숫자의 많고 적음이나 그 원인 추궁에만 시선이 쏠린다면 원래 목적을 잃게 된다.

그 문제가 아이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만약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곰곰히 살펴봐야 합니다.”


 

정말 동의하는 바이다. 일본의 따돌림 실태조사와 비슷한 조사로, 한국에는 ‘학교 폭력 실태조사’라는 것이 있다. 처음 이런 제도를 만났을 때는 마음이 참 따뜻했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너를 도와줄 많은 어른들이 있어. 걱정하지 말고 우리를 믿어” 라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 일을 직접 만나보니, ‘실태가 한 건이라도 나오면 평화롭지 않은 학교’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심지어 이 건수를 공개하고, 어떻게 건수를 낮출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해서는 어떤 이득도 볼 수 없다. 이러한 방식보다는 문제의 더 깊은 근본에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3.

“문제 상황을 배움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주체적으로 화해하는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데 지도의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때 “싸우지 마. 싸움은 나쁜 거야.” 라고 얘기하던 때가 있었다. 어쩔수 없이 일어나는 이 싸움에 대해 아이들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싸우는 아이들이 생기면 그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말썽꾸러기가 되어있었다. 또, 미움받고 싶지 않아하는 여자아이들은 싸움을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가져가 버려서 어른들이 파악하지 못하게 되거나 더 곪아서 심각한 수준에서 터져버리고는 했다. 30명의 아이들이 매일 좁은 교실이란 공간 안에 있으며 싸움이 없을 수가 없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 이후 나는 학생들에게 “갈등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어. 중요한 건 어떻게 화해하는지야.”라고 얘기했다. 아이들은 조금 달라졌다. 싸움이 생기면, 서로 “싸우지 마.”라고 말하는 대신 “빨리 해결하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이 때 선생님이 소개해준 싸움 해결 방법들, 아이 메세지 등을 사용해서 평화롭게 해결하고 다시 잘 지내게 되곤 했다. 이 아이들은 중요한 문제 해결 기술을 습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기술은 어른이 되고서도 중요한 삶의 배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4.

“우리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학생들이 익혀서 평생 일하는 데 써먹을 가치 있는 내용을 수업에서 다루어야 한다.”

 손가락 몇 번 움직여서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지식 주입식 강의만 한다면 자라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찾아서 필요한 지식을 추리는 방법,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기술, 자기 스스로에 대해 알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등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 심지어는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단편적인 지식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b style="font-weight: normal;"></b>
  • 다른 이야기이지만, 지식도 중요하다. 어느정도의 지식이 쌓인 후에야 그것을 바탕으로 창의력이 발달하기도 하고, 지식을 가져봐야 지식을 다루는 법을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식에 편중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그 내용과 철학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새롭게 배운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든든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교사가 실무를 어떻게 했고, 학생 생활지도와 학습지도를 어떻게 했는지 교사의 입장에서 쓰여졌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가 학교 혁신을 위해 한 노력들을 책에 같이 담았어야 한다. 이는 저자의 역량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문제이다. 관리자가 학교 전체의 시스템을 바꾸고 큰 틀을 바꿀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교사는 그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세세한 것들을 알맞게 바꾸어 나갔는지는 실무를 담당한 교사만 알 수 있다. 교육과정이라고 하는 교사의 역할까지 교장이 기술하였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빈약하게 느껴졌고 설득력 없이 느껴져서 아쉬웠다.

 또, 일본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걸리는 것이 일본 어투 특유의 번역체이다. 이 책에서는 번역체가 많이 드러나지는 않아 불편함이 적었다. 다만, 지나치게 겸손하게 논문이나 책을 쓰는 일본 문화가 드러나있어 또 불편했다. 자신의 업적을 세웠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기술 할 때마다 지나치게 겸손한 말투를 하며 주변 사람의 공으로 돌리고는 하는데, 이 부분이 한 문단을 차지할 정도로 길어서 글을 읽다가 내용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되곤 했다.

 내가 언급한 아쉬웠던 점은 표면적인 면에 불과하고, 그 본질적인 면에서는 배울점이 아주 많은 뜻깊은 책이다. 이 책은 학부모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교사, 특히나 어떤 철학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학교 관리자를 위해 추천한다. 어떤 마음 가짐으로 학생들을 만나야 하는지 고민 되는 교사를 위해서도 추천할 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