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읽는 인간 : 오에 겐자부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1.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집어들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메마른 문체, 무심한 묘사, 무구한 죽음.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사는 한 결코 알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다. 도대체 포크너는 왜 죽음을 이렇게나 음울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려낸 것일까. 한 줄씩 읽어내려가다 멈추어섰다. 이해할 수 없는 포크너의 세계는 나의 독서를 중단시켰다.


 그리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을 집어들었다. 이 책에서 겐자부로는 짧막하게나마 포크너에 대해 언급한다. 포크너는 슬픔, 비탄, 회한의 감정을 소설의 동력으로 여긴 작가라 한다. 그제서야 내가 포크너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 너머의 작가의 삶. 다시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다시 꺼내본다. 이제는 진실로 포크너의 '슬픔'을 느껴본다.


 하나의 소설은 작가의 생과 긴밀히 소통하며 협력한다. 작가는 자신의 관점, 가치관, 크게는 자신의 생을 투영해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존재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한 명의 작가를 만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삶'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작가의 생은 독자와 소설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2.


# 오에 겐자부로의 작가인생을 만든 책과 작가들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소설가이다. 이 소설가가 자신의 50년 작가인생을 만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읽는 인간]을 펴냈다. 그를 진정한 작가로 만든 것은 책이었다고, 겐자부로는 말한다. 그는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을 읽고 도쿄대학 불문과 진학을 결심했다. 포, 오든, 엘리엇은 이상적인 소설의 문체에 대한 영감을 준 시인들이다. 그는 시인의 위대함을 흠빡 받아들여 자신만의 문체를 다듬는다. 시인 블레이크의 슬픔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장남 히카리의 고독을 자기것처럼 느끼도록 했다. 아들이라 해도 알 수 없었던 타인의 고통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한다.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는 아들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 책을 넘어선 우정

 인간은 모두 홀로 존재하는 섬이라 했다. 그 섬에 닿으려 바다로 책을 띄운다. 책이 만들어낸 물결의 파장은 저 쪽 섬 누군가에게로 가닿는다. 그리고 그 섬의 누군가가 내가 읽었던 책을 집어들고, 다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띄어보낸다. 이렇게 책은 그에게 또 다른 책을 불러왔고, 그 책에는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이 담겨 있었다.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은 책에 대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권의 책은 인간(人間)의 사이(間)로 들어간다. 겐자부로에게 책은 혼자 읽는 행위를 넘어선 타인과의 소통이다. 나는 책과 우정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단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 오에 겐자부로의 독서법

 겐자부로의 독서법은 평범하지만 어렵다. 바로 번역본과 원본을 비교하며 읽는 재독(再讀)이다. 이 방법을 택하면 작가가 왜 특정한 상황속에서 특정한 어휘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미묘한 차이가 작품의 채도와 음영에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여린 감각적 차이에 대한 깨달음은 자신으로 스며와 오로지 자기만이 쓸수 있는 글로 다시금 채색된다. 또 다른 방법은 3년마다 읽고 싶은 대상을 새로 골라 그 작가, 시인, 사상가를 집중해서 공부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확실히 겐자부로를 노벨문학상 작가라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 올렸다. 나는 할 수 있는 방법인가? 이는 또 다른 문제인데, 읽는 도중 나를 픽- 웃게 만들었다. 전업작가로 마음을 굳히지 않는 이상, 밥벌이의 지겨움이 가로막을것이 분명하다. (^^)




3.

 위대한 작가들에게는 보통 인생의 아이러니가 작동한다. 작품은 위대할지언정 그들의 삶은 평이하지 않다는 것, 심지어 최대의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산다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도 이 아이러니에서 벗어나기 힘든 인물이었다. 인생 최대의 슬픔이라 여긴 아들의 장애는 삶의 '비탄'을 불러왔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삶에서 비탄이 아닌 다른 감정들을 발견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아버지의 따뜻함을 보았다. 원본과 번역본을 친절하게 비교 설명하는 모습에서 교수님의 인자함을 느꼈다. 새 책을 내놓던 날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자신의 책을 밀어낸 것을 보고 작가생활에 위협을 느끼는 모습에서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삶에는 오히려 반딧불이와 같은 희미하지만 따뜻한 위로가 있다고, 그의 책은 끊임없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자, 이제 나는 그의 소설을 읽을 준비가 조금은 되지 않았을까.










*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책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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