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사영어토론 수업뿐 아니라 국제학과 학생으로서 외국인을 많이 접하는 나는 그들과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정치에 관한 수업만 해도 동아시아 평화와 긴장의 변수인 한일 관계는 수업 대부분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동아시아에서 결코 대화로 풀리지 않는 고리가 하나 있다면 바로 그것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고리'이다. 이 고리는  많은 한국인뿐 아니라 비아시아 국가의 외국인들에겐 오해로 얼룩져 있거나, 한국이 피해자이고 일본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지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외국인 교수님과 학생들과 수업을 듣고 토론을 하면서 다가온 한가지 슬픈 사실은 한일관계에 대한 그들의 이해 속에는 바로 현대에 들어 한국이 가해자로, 일본이 피해자로 여겨지는 등 가해와 피해의 사실 관계가 도치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눈으로 보았을때, 한국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에 대해 수차례 사죄를 했고, 도쿄 재판에서 전범자들은 처벌을 받았으며, 왜 여전히 사과와 보상을 원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심지어 몇몇은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상대로 깡패처럼 군다는 인식까지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식에는 명백히 두 가지가 결여 되었다. 첫 번째는 역사적 팩트에 대한 결여이고, 두 번째는 역사적 팩트에 대한 해석적이고 인식론의 결여다. 그들을 비난하고자 함은 아니다. 내가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민족주의자나 종족주의자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든 동일한 역사적 인식과 해석으로 그들의 주장에 대응했을 것이다. 한홍구님이 책에서 말씀했듯이 나는 식민지와 전쟁범죄 문제를 "보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기본적으로 한일 관계는 한국인에게든 다른 이들에게든 많은 오해로 점철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한일청구권에 명시된 배상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 협상은 개인에 대한 청구권까지 포함하는가? 그들의 배상은 어떤 성격을 지녔는가? 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우리는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치명적인 오해를 하기 쉽다. 이미 피해에 대한 보상은 이뤄진 것이 아닌지, 왜 한국인들은 보상을 받고도 또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지, 한국인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그러나 간단히 말해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극우세력의 "반일종족주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알지 못하면,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없이 타인의 의견만을 따라간다면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걸려들어 얼마나 쉽게 부당한 논리에 빠질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선 1965년의 한일 청구권에 각 개인의 청구권이 이로 소멸하는지 않는지에 관해 한일 양국간의 입장 차이가 있다. 일본은 한일청구권으로 인해 각 개인의 청구권도 소멸했다고 보지만, 한국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의 모순이 등장한다. 애초에 국가간의 청구권 협정은 각 개인의 청구권을 포함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소멸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은 바로 일본이었다. 세계 2차 대전에서 패한 후 피폭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국가가 바로 일본이었고, 그들은 일본 국민이 핵폭탄을 터트려 피폭 피해를 받은 일본 개개인의 국민에게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국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논리를 뒤집어 한일 청구권 협약으로 모든 피해보상이 완료되었으며, 그렇기에 일본은 전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민에게는 인정한 권리를 한국인에게는 인정하지 않는 이 모순에 대해 일본정부는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일본 정부가 전후 55년 체제동안 해온 보상은 과연 어떠한가? 일본 정보는 고노 담화를 통해 일정부분 한국의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금은 대부분 사적영역, 즉 일본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지원해서 나온 금액이지 국가의 이름으로 지불된 배상이 아니었기에 계속해서 문제가 된다. 국가가 피해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과거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인정과 공식적인 사과를 의미하는데, 일본 정부는 교묘하게 이를 사적 영역으로 옮겨놓음으로서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고 회피했던 것이다. 공적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사적영역으로 옮겨지게 하는 것은 국가행위의 불법성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대표적인 눈가림막이다.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는 파리기후 협약에서 호주의 탄소 배출량 감소를 약속했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조치를 국가적 차원에서 이행해야 했지만 결국 사적영역인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단순한 인센티브 형태로 그 책임을 돌려버린 예가 있다. 그래서 얻은 결과는 결국 호주의 꺼지지 않는 산불과 수많은 인명과 재산, 자연피해였다. 



한홍구님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 보편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기에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러한 관점에 대해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로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과 한홍구 님의 의견에 완벽하게 동의한다. 애초에 한국은 '위안부' 문제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그 논리는 일본남성이 한국 '여성'을 강간했다, 이는 나라가 힘이 없기 때문이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국력을 키워야 한다, 라는 식이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논리 아래에는 '더럽혀진 여성'과 '순결한 여성'이라는 이라는 이분법적인 여성혐오 관념이 흐르고 있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응하여 같은 폭력적인 논리로 대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때때로 한국남성들은 우리도 일본 여성을 강간하자고 외치기도 했으며, 효순이, 미순이 사건 당시 미국에 대한 반발로서 "Fuck You, USA"와 같은 강간의 노래를 탄생하게 하기도 했고, 박근혜 탄핵심판 중의 촛불항쟁 동안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성성을 비난하는 혐오언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민족 안에 '여성'이란 존재하는지 부터가 의심스럽다. 과연 그 민족이란 누구인지, '남성'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만약 그 민족 안에 여성도 포함이 되었고, 한국이 국력이 약해서 한국 여성들이 결코 회복되지 않을 피해를 입은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한국국민이 인정했더라면, 왜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그토록 오랜기간 동안 수치심에 시달리며 침묵해야 했는가. '위안부' 문제는 젠더의 문제로 한홍구님이 말한 것처럼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강제 징집이 남성에게 한정된 폭력에 가까울지언정 나는 그것이 남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똑같이 '위안부' 문제가 여성에게 한정된 폭력일지라도 그것은 여성의 문제이고, 그렇기에 보편적인 인권 문제이다. 이 문제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해야 하고 그럴때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본은 아베라는 인물이 추구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을까? 일본의 극우화는 어쩌면 예정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베 정부 이전의 55년 체제 동안의 일본은 최소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했으며 어느정도의 상식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2011년 지진과 핵시설 파괴, 1990년부터 시작된 경제 불황과 같은 국내외적 상황으로 당시의 여러 당이 파괴되며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그 사이 아베는 극우익 단체인 일본회의를 결성하여 점차 정치권을 장악해 나갔는데 그 결과 현재 아베 내각의 70%가 극우정치결성체인 일본회의 멤버가 차지하고 있다. 일본회의는 정치뿐 아니라 교육 분야에도 손을 뻗쳤다. 새역사교과서모임인 새역모를 만들어 일본인의 역사의식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처음에 교과서 채택률이 너무나 낮자, 곧 아베는 교과서 채택 방식 자체를 바꿔버린다. 그 결과 현재 일본의 20대들은 아베가 의도한대로 보수화되었고, 넷우익이 활개를 치며 혐한을 외치고 있다. 



한국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정부의 경제적 보복조치는 일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나 다름없다. 아베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목표를 위해 국내외적 정세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아베의 자신감 뒤에는 미국이, 앞에는 남북한의 분단 현실이 놓여져 있다. 일본의 극우인 아베를 지탱하는 이 두 축 중 하나라도 균열이 생기거나 무너지는 날에는 아베 정권은 몰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그럼에도 일본의 극우화는 일본이 정치적으로 국가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하나의 징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의 태도가 이럴지언정, 결코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한일관계는 어떤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까. 한홍구님은 일본과 한국의 시민사회의 연대를 희망으로 제시한다. 극우정치 세력과 국내외적 상황에 의해 일본시민사회가 많이 붕괴되었을지언정 여전히 양심있는 시민들이 남아있고,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평화를 원한다. 시민적 연대가 남아있으면 당장 현세대는 아닐지라도, 미래의 세대에겐 희망이 있는 것이다. 화해의 길은 탑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바텀업 방식으로 이루어지도 한다. 부모세대가 하지 못한 일을 자식 세대에서는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자. 



개인적으로 엄청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늘 한일관계에 대해 많은 오해를 가진 이들과 대화를 나눠야 했고, 심지어 언어의 방식이 영어였던지라 늘 큰 부담감이 있었다. 내가 어디까지 설명해서 해명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은 너무 전문적이라 해학적으로 들리진 않을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고 복잡한 사건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싫어한다) 걱정하고 고민한다. '위안부', 강제징용, 한일관계, 경제보복 등에 대해 정치철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국제관계적이고 외교적인 실용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수업에서는 흔히들 '객관적'이라는 태도를 유지하며 역사적 현실을 무시하고 일본과 한국을 동등한 선에 놓고 논의하는 경우가 잦은데, 사실 이러한 태도는 내게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해명하는 것이 엄청난 피로감과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태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내민 관점의 다양성과 객관성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팩트는 팩트이고, 우리는 반일종족주의의 관점을 가진 이들에게, 혹은 단순히 오해를 하는 이들에게 설명할줄은 알아야 한다. 설명 이후의 판단은 그들의 몫이겠지만, 대화와 토론의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다. 모든 한국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한일우익근대사완전정복 #이영채 #한홍구 #한일관계 #반일종족주의 #아베정권 #일본우익 #책 #한일관계책추천 #국제관계 #동아시아 #책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