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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야
마광수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8월
평점 :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마광수작가의 소설 '나는 너야'!!!
극단적인 페티쉬나 성교의 형태를 아무 거리낌없이 표현하는 작가로는 마광수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1990년대 초 마광수만큼 이슈가 된 인물도 드물다. 그는 자신의 글 <즐거운 사라>때문에 외설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작가다. 아무리 우리가 지난 세대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세상에 산다고 해도 성이라는 것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은 실로 무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가장 섬세한 것일지도 모르는 우리의 성의식을 작가는 자신의 성적 환상과 취향 그리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상상적 호기심들을 소재로 나름의 주인공들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부끄럽다 느끼는 걸 보면 나 역시 얼마나 한국의 성의식이라는 것에 관해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에로티시즘과 포르노의 차이는 뭘까?
그것은 예술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과 동시에 오로지 성관계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느냐의 차이다. 작가의 에로티시즘은 거의 포르노 수준에 가까운 어찌보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점은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주인공들이 그들 나름의 심리 상태가 더해져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점점 더 세세하고 외설스럽게 느껴짐과 동시에 각자의 심리상태를 글로 풀어내는 방식은 작가만의 독특한 스타일인 듯한데 자신의 어릴적 트라우마를 이런 식의 글로 치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뭘까? 그의 글을 읽다보니 사진가 헬무트 뉴튼과 노부요시 아라키가 자꾸만 떠올랐다.
글의 대부분에는 청년시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지금 작가는 그 시절로 회귀하고 싶은 그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한데 글에 등장하는 몇몇의 주인공들 역시 하나같이 작가 자신을 대신한 사람들인 거 같고 학창 시절과 젊은 날의 자신이 그 학교에 다녔다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듯 연거푸 반복해서 써낸다.
내가 읽는 방식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글쓰기의 형식도 특이하다. 아직 덜 성숙한 사람이 쓴 것처럼 뭔가 엉성하고 서투른듯한 부분들이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인건지 (이전 소설을 읽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원래 성향이며 계속 이렇게 써왔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성년이 아닌 사람이 쓴 거처럼 특이하다.
페티쉬나 포르노의 형태를 보면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쓰는 경향이 많다. 또한 사디즘적인 남성 자신의 성적 경향을 대신해서 글로 표현하는 작가들이 많다. 작가의 글 곳곳에도 언어 성폭력에 가까운 문장들이 등장한다. (내 입장에서 볼 때) 글이 아무리 자유롭게 쓰는 작가 고유의 표현양식이라고는 하나 지극히 주관적인 작가의 내면세계와 그의 취향만을 다루는 것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내면세계만을 표현하는 것 보다 여성들이 원하는 에로티시즘에도 관심을 가져볼만할 거 같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자면 작가는 사랑의 개념을 육체적인 것에 많이 치중을 두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다른 스타일의 사랑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인 사랑보다 오로지 육체적 관계에만 집착한다. 또한 대부분의 글들이 주로 짝사랑에 대한 글이다. 아니 외사랑이다. 친구의 여자를 사랑하거나~~ 꿈 속에서나 만날만한 아니면 포르노에서나 등장할 듯한 남성들의 희망사항일 뿐인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주인공들은 그들을 상대로 꿈을 꾸고 있다. 마치 자신이 그녀들의 주인인양 말이다.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여성의 어떤 자세나 제스추어를 보더라도 꼭 성적인 환상으로 연결하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내가 볼 땐 그냥 편안하게 주인공과 대화를 하는 것 뿐인데 글의 여주인공들은 마치 발정난 암캐마냥 언제나 색기를 흘리는 것처럼 그려내고 있다.
과감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던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서 꼭꼭 눌린 무의식과 성적 본능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것은 작가의 세계관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면 좀더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에로티시즘 문화와 글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쨌든. 성에 대한 언어표현을 과감히 표현하는 작가로 치자면 마광수만한 사람이 없음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