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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 웃었다 - 김영철 에세이
김영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평점 :
나는 '투 머치 하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무언가를 하면 꾸준히, 성실히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를 좋아한다. 도중에 그만 두는 법이 없다.
제목처럼, 아이가 감정의 홍수상태에서 눈물을 보인다. 하지만, 울음이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양육자의 위로를 받고, 스스로 감정도 조절해가며, 눈물을 멎을 것이고 다시금 방긋 웃음을 보일 것이다. 울다가 웃는 것이다.
개그맨 김영철도, 서두에서 학창시절 사고로 잃은 형과, 자신에게 쏟아진 악플에 대해 덤덤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나를 당신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수많은 악플 속에서 빛나는 선플을 기억하며, 다시 웃는다. 결국, 울더라도 마지막에 웃고 있다라면 결국 해피 엔딩이고 즐거웠던 인생이였다고 기억되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 나의 목표는 이것이다. 헤매며 휩쓸리거나 휩쓸리면서 헤매어보기
"힘을 내요 슈퍼 파월" 내 기억 속의 개그맨 김영철의 모습이다. '재미없다' 라는 하나의 모순적인 캐릭터로 녹아든 것 같지만, '재미없다' 라는 말에 결국 재미없어 진 것이 아니라 뻔뻔하게도 웃긴다. 아니 웃기고 말았다. 무한도전 베개 싸움 중 고요한 적막 속에서 부르는 김영철의 응원가를 나도 본방송에서 보았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 이외에도, 에세이 중 일화를 읽으며, 김영철은 미래를 그릴 줄 아는 사람이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일화 중 개그맨 김영철(씨) 와 같은 긍정적인 사람이 곁에 있다면, 주변 또한 밝아지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삶의 용기를 은연중 얻게될 것같았다. 올해, 늘 긍정의 마음을 가지기란 쉽지 않겠지만,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마음 가운데, 작은 티끌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주변의 타인 또는 나 자신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를 바래본다.
(본문 중)
"영철씨, 낭중지추! 웃고 나서도 찝찝한 독설 막말 개그 안하고, 무더기무더기 누구 라인이라 말하며 편짜서 출연 안하고, 얼굴과 입담만으로 정직한 웃음을 주던 영철 씨가 비주류와 비호감이라는 화살을 받으며 무시당할 때 무척 슬펐는데, 요즘 내가 영철 씨의 오래된 팬이라는 게 행복하네."
아이디 '로케트' 님이 쓴 댓글인데, 2015년 5월 4일 오전 8시 3분에 캡처해 휴대전화 사진첩에 소중히 보관해두었고 가끔 꺼내 읽는다. 나를 진정 알아주는 팬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 댓글을 읽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염없이 우는 와중에, 난생처음 보는 단어 '낭중지추'의 뜻이 궁금해 검색했다. "주머니 속 송곳같이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자연스레 두각을 나타낸다." 라는 뜻을 보자마자 잦아든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살다 살다 사자성어 뜻풀이에 이렇게 울다니! '군계일학' 같은 거창한 말이었다면 오히려 큰 감흥이 없었을 것 같은데, '낭중지추'는 무언가가 내 가슴을 뾰족하게 찌르는 느낌이었다.
을씨년스럽기도 했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기다리는 제자처럼 아주 평화롭게 10여분 동안 서성였다. 아주 잠깐, 그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고 심호흡을 하며, 나의 지난 10년을 돌아보았다. 돌이켜보니 나는 조급했고 다급했지만, 나의 속도와 박자에 맞춰 살았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엇박자로 흘러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월든 길에서 나는 지금처럼 호기롭게 잘 살아 갈 것을 다짐했다. <월든>에서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라는 구절이 있다. '일행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되는데' 라고 소로가 나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출연자 아이에게 마이크를 딱 갖다 대는데, '아저씨 손에서 아빠 냄새가 나요' 라고 하잖아 '그게 무슨 말이니?' 라고 물어더니 '아저씨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나요!' 하는거야 그래서 그날 끊었어. 왜냐면 영철아, 담배는 1월 1일에 끊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끊는다. 그러면 안돼 그냥 바로 그순간 끊는거야!" 갑자기 담배를 끊은 호동이 형이 대단해보였다. 그 뒤로 지금까지 담배를 손에 들지 않는 모습에 엄지를 치켜 세워주고 싶다. 아주 칭찬해.
다짐도 맹세도 날짜 맞춰서 해봤자 지켜지지 않는다. 언제든 딱 마음 먹었을 때, 그때 바로 시작하면 된다. 나는 모두가 시간에 쫒기지 말길 바란다. 숫자에 갇히지 않길 바란다.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어 현명하게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몸에 걷기가 좋으니 걷는 시간도 만들고 주변인에게 안부 문자도 자주 하고, 어학 공부도 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문득 결심하길 바란다. 소소하게, 작은 것 부터 하나씩 그렇게 말이다.
누나와 나는 밀린 이야기를 속사포 랩처럼 빠르게 하고, 근처 편집숍에 들렀다. 누나의 딸이 하교할 시간이 되자 헤어졌다. 작별 인사를 하며 누나가 말했다. "영철아, 우리 또 만나자, 이 근처 올 일 있으면 전화해. 이근처에 서점도 있고, 이것저것 볼 게 많아. 저녁까지 여기 좀 구경하고 걷고 그러고 헤매다 가." "헤메다 가"라는 말에 꽂혔다. 순간 그 말이 신선하고 세련되게 느껴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갈 바를 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라는 의미였는데,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새로운 단어를 찾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잊고 있던 단어와 그 뜻을 다시 확인하고 단어의 깊은 맛을 알게 될때의 짜릿함이란! 나는 누나와 헤어지고 나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 세 시간 가량 걷고 또 걷고 헤맸다. 북촌인지 삼청동인지 서촌인지 효자동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 배운 영단어 'wender' '거닐다,돌아다니다,헤매다'의 뜻을 기억하며 그렇게 골목길을 하염없이 헤매보았다.
<군주론>을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무엇보다 권태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나도 꽤 권태롭고 지루해하며 20대와 30대를 보냈던 적이 있다. 그런 지난한 세월을 보내면서 나름 한가지를 깨달았다. 이래도 저래도 하루는 지나간다는 것.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그 순간을 즐기면 된다.
관심과 간섭은 다르다. 뭐가 그리도 궁금할까. 누가 이혼했으면 '뭐, 했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
친한 사람이라면 한번 안아주면 된다. '좀 더 참고 살지 그랬니? 요즘 이혼은 흠도 아냐'라고 말하고 싶어도 참으면 된다. 쓸데없는 말은 입안에 넣어두면 된다. 결혼하면 '왜 이제 하냐?'라고 묻지 말고,
'정말 축하해'라고 말하면 된다. 아들이든 딸이든 낳으면 '아이고, 고생했다. 잘했다'라고 토닥이고, 쌍둥이를 낳으면 '어머나 이게 머선 일이고! 라고 웃어주면 된다. 각자의 처지와 상황에 대한 '건조한 배려'가 필요하다. 물을 주지 않아 말라비틀어진 화분 속 흙 같은 '말라비틀어진 배려'가 아닌,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건조한 배려'가 절실하다.
2016년 10월 24일, 라디오 DJ가 된 첫날, 첫 오프닝은 내가 썼다. 각오와 계획을 주저리주저리 말하다가 "청취자에게 많이 들키겠다"라고 했다. 라디오 방송은 목소리만 들어나기에 기분을 쉽게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청취자분들은 목소리를 듣고 오늘 DJ의 기분이 어떤지 귀신같이 알아맞힌다. 그러니 웬만하면 유쾌하게 방송하고, 어제 뭐 했는지 오늘 뭐 할건지 솔직히 말하고, 진짜 내 모습을 속속들이 보여주겠다는 다짐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의 나는 이런 모습을 갖기를 꿈꾼다. 당당하고 솔직하고 너그럽고 따스한 사람,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고 아는 건 안다고 말하며, 잘난 척도 하고, 외롭고 쓸쓸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그럴싸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 남이 나를 치켜세워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은 이게 너무 힘들다. 그래도 겸손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오늘도 힘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