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사는 러블레이스의 명성을 알고 있지만, 그의 행은 번번이 그녀의 예상을 빗나간다. 그는 정중한 데다 다소 슬프고 혼란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가 비탄에 빠진자기 가족한테 고상하고도 자비로운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언니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있으며, 가족들에게 충고까지 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마침내 러블레이스는 클라리스에게 그녀의 짐작을 확인시켜주는 고백을 했다.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그 동안의 생활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에게 보낸 그의 편지들도 종교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나서서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물론 러블러이스가 그녀에게 친 함정이었다. 그는 상대의 취향을 그대로 모방하는유혹자의 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경우 그가 공략한 것은 그녀의 숨고한 정신이었다. 경계심을 늦추고 자기가 그를 개조할 수 있다고 믿는순간 그녀의 운명은 정해졌다. 이제 그는 편지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통해 그녀에게 서서히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켰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생각이다. 상대의 가치관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경우 두 사람 사이에 뿌리 깊은 조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있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육체적인 단계로 옮겨갈 수 있다.

1925년 파리로 건너간 조세핀 베이커는 이국적인 정서와 매력을 앞세워 하룻밤 사이에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예나 지급이나 매우 변덕스러웠다. 조세핀은 자신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얼마안 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중을 영원히유혹하려면 그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야 했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배워프랑스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옷차림과 행동거지도 멋쟁이 프랑스 여성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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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성 유혹자 가운데 한 명인 니농 드 랑클로는 지극히 여성스러웠지만, 분명 남성적인 면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철학 지식으로 남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는 한편, 정치와 전쟁에도 남자들지않은 관심을 보이면서 그들을 매료시켰다. 

남자들은 대개 처음에는그녀와 깊은 우정을 쌓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친 듯이 그녀에게 파져들었다.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여성적 특징이 여성의 경계심을 완화시키듯이, 여성에게서 발견되는 남성적인 특징도 같은 효과를 낸다. 여성의 낯선 특성들은 남성에게 절망감과 심지어 적대감까지 유발할 수 있다. 

성적 매력으로도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지만, 주문이 오래 지속되려면 정신적인 유혹이 동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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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악의적이거나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하는 대신 유혹자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을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나오게 하려면 먼저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우리는 모두 나르시시스트이다. 유아기 때는 이런 나르시시즘이 육체적인 측면을 지닌다. 

어린아이들은 마치 다른 대상을 바라보듯 자신의이미지와 몸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 성장하면서 우리의 나르시시즘은심리적인 측면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기호 의견, 경험에몰두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 주변에는 두꺼운 껍질이 형성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사람들을 두꺼운 껍질에서 나오게 하려면 그들처럼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저 들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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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카르노 대통령으로부터 단독 인터뷰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 일1961년 10월 미국 언론인 신디 애덤스(Cindy Alans)는 인도네시아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애덤스는 거의 무명이었던 데구 비해 수카르노는 위기의 의중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그 두고 싶은가‘이다. 인도네시아의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수카르노는 식민세력 네덜란그대를 드가 물러간 1949년 이후부터 줄곧 대통령직에 있었다. 1960년대 초반- 말았다는 점을 그는 대담한 외교정책으로 미국의 미움을 사 아시아의 히틀러라는 별명주차시키라/을 얻기도 했다.

전세계의 이목이 이 인터뷰에 집중하는 가운데 애덤스는 수카르노에게 겁을 집어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벼운 농담으로 대입고 있다면책을 칭찬하라!
을 입고 있다면비단옷이 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해빙 전술은 효과가 있는 듯했다고 말해주라!

노래를 부르거나다. 수카르노는 그녀를 따뜻하게 격려하면서 1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큐민 끝에 가서 줄곧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자 그녀에게
"시"를 외치라선물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그녀의 성공은 분명 주목할 만했지만, 그보서도 방중이또 기가막혀서 다 더 놀라운 일은 그녀가 남편과 함께 뉴욕으로 돌아간 후에 일어났다.

그대의다름이 아니라 수카르노로부터 호의가 넘치는 편지들이 속속 도착하기다고 칭찬하라/메두사보다위 보일지언정,
이를 데 없다고말해주라!
시작했던 것이다. 몇 년 후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전기를 같이 집필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삼류 명사들을 어르고 달래는 데 이골이 난 애덤스였지만 이번만큼은입에 발린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수카르노가 악명 높은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익히소리를 할 때는심을 들켜서는절대 안 된다! 정도였다. 그는 정식 부인만 네명인데다 수백 명의 첩을 거느리고 있었들어 알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그를 가리켜 위대한 유혹자라고 부를다. 게다가 그는 미남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적인 법이다!
하는 순간부터 분명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에 하필이면 왜 그녀를 선택했을까? 거기그대는 영원히- 잃고 말리니<사람의 기술 한 일들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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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대의 어느 날 저녁 한 청년이 자신의 연인인 모 백작부인을만나기 위해 파리 오페라좌에 들렀다. 하지만 서로 심하게 다툰 뒤라 그는 그녀를 다시 보기가 두려웠다. 백작부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친구인 T 부인이 청년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만나다니 대단한행운이라며 여행을 가는데 함께 가자고 졸라댔다. 청년은 백작부인을만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부인이 하도 권하는 바람에 결국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그녀는 그가 행선지를 묻기도 전에 밖에 대기하고 있던 자신의 마차로 그를 안내하더니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청년은 부인에게 행선지가 어디냐고 물었다. 처음에 그녀는 웃기만하다가 나중에야 남편의 성으로 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한동안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화해하기로 결심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남편이 워낙 따분한 사람이라서 그처럼 매력적인 청년이 중간에서 분위기를 띄워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호기심이 생겼다. 비록 정부가 있긴 했지만, 부인은 나이도 지긋한 데다 대체로 점잖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왜 이 여행에 그를 선택했을까? 그녀의이야기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었다.

잠시 후, 그녀는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가리키며 창 밖을 내다보라고 권했다. 그가 그렇게 하려면 그녀 쪽으로 몸을 기대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차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그녀는 그의 손을 움켜잡은 데이어 그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런 상태로 있더니 다소 거칠게 그를 밀어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방금 전의 일로 자신을 경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그 일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을 뿐이며 경거망동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를 품에 안아본 그는 실제로는 다른 생각을품고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성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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