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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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신작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2020년대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으며 우리가 지켜내려 했던 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의 우아한 홈 파티에 초대받아 자신의 초라함을 확인하거나(홈 파티), 이사 가야 하는 전셋집에서 집값이 안정되길 바랐던 자신의 무지함을 자책한다(좋은 이웃). 작가는 이들이 머무는 방 한 칸이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 지표이자 내력이 담긴 총체적인 세계임을 서늘하게 증명해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프게 다가온 지점은 누군가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이 부당하고 지리렬렬하게 느껴졌다는 대목이었다. 몇 년 전, 나 역시 이사를 앞두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밀한 사생활이 담긴 집을 수시로 공개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취향이 묻은 벽지와 가구들이 부동산 매물로서만 평가받고, 다음 세입자의 눈길에 내 삶의 궤적이 훑어 내려질 때 느꼈던 그 묘한 모멸감과 무력함. 소설은 그 지독한 부대낌을 정확히 끄집어낸다. 내 집을 갖지 못한 서러움이 단순히 경제적 결핍을 넘어, 타인에게 내 존엄의 테두리를 허락해야만 하는 비정함으로 치환될 때의 씁쓸함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결국 이 소설집은 우리가 잃어버린 공간의 평화에 대한 애도와 같다. 비록 우리가 선 자리가 여전히 위태롭고 타인의 공간 앞에서 주눅 들지라도, 작가는 그 오해와 이물감 속에서도 서로의 안녕을 묻는 일이 가능하다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비정하고 서늘한 현실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건네는 이 인사는, 그래서 더없이 묵직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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