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로 에르콜레의 추기경 임명에 반대했지만, 교황은 듣지 않았다.
교황에게는 물론 4만 두카토가 중요했지만,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을경우에 대비한 포석도 그의 마음 속에는 깔려 있었다.
만약의 경우에는 에르콜레 추기경이 방패막이가 되어줄 거라는 계산이었다.
5월 5일, 부르봉 공작이 이끄는 독일-에스파냐 연합군이 로마 성벽 밑에 도착했을 무렵, 추기경의 빨간 모자가 콜론나 궁전에 있는이사벨라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로마를 떠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부르봉과 페란테의 진영에 사람을 몰래 보내.
설령 로마가 점령되더라도 자기가 머물고 있는 궁전의 안전은 보장해달라고 요청했다.
부르봉 공작은 그녀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장 이사벨라의 명령으로 궁전에 바리케이드를 쌓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사벨라가 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것을눈치챈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호를 요청해왔다.
그것은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공주로 태어난 사람은 평생을 공주로서 살아간다"는 생각, 다시 말하면 윗사람은 언제나 아랫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나온 행위였다.
콜론나 궁전에속속 피난해온 로마의 상류층과 귀족들은 전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을 포함하면 무려 3천 명에 이르렀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사벨라는 조용히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1527년 5월 5일 밤, 황제군은 몬테마리오를 지나 로마 성벽 바로밑에 진을 쳤다.
한밤중에 나팔이 울려퍼지고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 지점은 바티칸 언덕위, 톨리오네 문과 산토스피리토 사이였다.
이 소식이 들어왔을 때, 교황은 바티칸 안에 있는 성 베드로 동상앞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바티칸 근위대인 스위스 병사들이 침략군과 맞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에스파냐제국! 에스파냐제국!"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로마 시가지 위에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다.
시종들이 교황을 산탄젤로성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로 인도했다.
파올로 조비오는 자신의 진홍빛 망토를교황에게 입히고, 자신은 하얀 저고리로 적군의 눈길을 끌면서 산탄젤로 성의 널다리를 들어올렸다.
늦게 도착한 늙은 추기경 아르멜리나는 성분이 밖에서 열리지 않도록 문지방 구멍에 고정시키는 격자문이 내려온 뒤, 바구니로 끌어올려졌다.
또 다른 늙은 추기경 푸치는 공포와 피로로 반쯤 죽은 상태가 되어 창문으로 끌어올려졌다.
영국과 프랑스 대사는 그렇게 피신하기를 거부했다가, 나중에 렌초에게 구조되었다.
그러나 바티칸 경비를 맡고 있는 스위스 용병들은 이날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화려한 제복 차림으로 바티칸을 경비하고 있는 스위스 용병들을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1년에한 번 그들만의 명절이 있는데, 그것은 500년 전 절대적으로 우세한독일-에스파냐 연합군에 맞서서 바티칸을 지키려다 전멸한 선배들의 죽음을 기리는 날이다.
독일 군대는 피오리 광장에 집결했고, 에스파냐 군대는 나보나 광장에 진을 쳤다.
페란테 곤차가는 산탄젤로 성으로 통하는 다리를 감시했다.
이제 폭도로 변한독일 용병과 에스파냐 병사들은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을 습격했다.
아녀자도 무차별로 공격했다. 약탈과 폭행과 파괴가 계속되었다. 교회도 제단도 약탈당했다.
그 덕에 적어도 교황의도서관과 진귀한 수집품들은 약탈을 모면했다.
그러나 플랑드르산태피스트리나 라파엘로의 밑그림은 도난당했다.
그리고 독일 용병들은 라파엘로의 프레스코 벽화가 있는 방들을 마구간으로 사용했다.
황금으로 제작된 콘스탄티누스의 십자가는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성당의 출입문을 통해 어딘가로 반출되었고,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은도굴당했다.
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독일 용병들의 만행에는 에스파나 쪽도 놀랐다.
카를 5세의 판무관인 가티날레는 황제에게 이런 보고서를 보냈다.
산 피에트로 성당도, 교황의 궁전도 이제 마구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오랑주 공작은 병사들의 질서를 되찾으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폭도로 변해버린 용병들을 어찌할도리가 없습니다.
독일용병들은 교회에 대해 아무런 존경심도 갖지 않은 루터파 교도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여겨지도록, 그야말로야만인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모든 귀중품과 예술품은 파손되거나도난당했습니다."
콜론나 궁전에서 이사벨라는 이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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