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토바의 페데리코는 이사벨라에게 빨리 귀국해달라고애원하는 편지를 잇달아 보냈다.
귀국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로마에서는 떠나달라고 애원했다.
로마에 있는 어머니의 신변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제군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조카사위인 부르봉 공작인데다, 셋째아들 페란테도 카를 5세의 군대에서 부대 하나를 맡아 지휘하고 있었다.
게다가 둘째아들 에르콜레는 아직도 추기경에오르지 못했다.
이사벨라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반 년 뒤에벌어질 ‘로마 약탈‘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1527년 5월, 부르봉 공작이 비테르보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바티칸에 전해졌다.
위험을알아차린 시민들은 귀중품을 산탄젤로 성으로 나르거나 땅 속에 파묻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로마 밖으로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안 교황은 피난 금지령을 내리고, 피난하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리겠다고 경고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렌초 다 첼리가 이끄는 약간의 병력이 성벽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교황청 주재 프랑스 대사인 뒤 벨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날 아침, 나는 교황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교황의 마음 속에숨어 있는 두려움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교황은 렌초가 1천 명의 병사를 더 모으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적으로도 지금의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황은 추기경을 새로 임명하여 이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려고했다.
만토바의 페데리코는 이사벨라에게 빨리 귀국해달라고애원하는 편지를 잇달아 보냈다.
귀국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로마에서는 떠나달라고 애원했다.
로마에 있는 어머니의 신변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제군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조카사위인 부르봉 공작인데다, 셋째아들 페란테도 카를 5세의 군대에서 부대 하나를 맡아 지휘하고 있었다.
게다가 둘째아들 에르콜레는 아직도 추기경에오르지 못했다.
이사벨라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반 년 뒤에벌어질 ‘로마 약탈‘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1527년 5월, 부르봉 공작이 비테르보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바티칸에 전해졌다.
위험을알아차린 시민들은 귀중품을 산탄젤로 성으로 나르거나 땅 속에 파묻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로마 밖으로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안 교황은 피난 금지령을 내리고, 피난하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리겠다고 경고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렌초 다 첼리가 이끄는 약간의 병력이 성벽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교황청 주재 프랑스 대사인 뒤 벨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날 아침, 나는 교황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교황의 마음 속에숨어 있는 두려움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교황은 렌초가 1천 명의 병사를 더 모으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적으로도 지금의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황은 추기경을 새로 임명하여 이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려고했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에 감싸여 있었지만, 성벽 위에 진을 친 바티칸 수비대와 산탄젤로 성에서 쏘아대는 대포의 강렬한 불빛이 밀려오는 적군의 대열을 훤히 비추었다.
부르봉 공작은 은빛 갑옷을 입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에 올라타고, 성벽에 매달려 있는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캄포산토 근처의 성벽에 세워져 있던 사다리를 탈취하여, 따르는 병사들을질타하거나 독려하면서 직접 성벽 위로 올라섰다.
이 광경을 보고병사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가까이에 있던 병사들은 부르봉 공작의 외침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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