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탐정 설록수
윤해환 지음 / 씨엘북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추리 고수님께

추리 고수님,
어제까지 추리계의 교과서인 셜록 홈즈 전집을
다 읽었습니다.
하지만 추리 하수인 제가 읽기에는 그 교과서는
조금 무리였습니다.
아무리 세계에서 칭송하는 셜록님이라고 하셔도
제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많은 셜록키언을 배출시킨 셜록님을 그리 말하는게 불경스러운 일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추리 고수님께 셜록님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분이시니까요.
그 분의 파트너 왓슨 박사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 해주셨던지 자다가도 가끔씩 제 꿈에 나와주실 정도입니다.
그런 제게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네, 추리 고수님은 제게 있어서 스승님이시니 더 이상 토를 달진 않겠습니다.
추리 고수님께서는 그런 제가 안스러우셨나요?
고수님의 책장에서 뭔가를 한참 찾으시는 게 또 '추리계의 고전이며 위대한 교과서이니 꼭 꼭 읽어둬야 하느니라' 식의 책을 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제 손에 쥐어주신 책은 듣도 보도 못한 책이었습니다.
작가도 우리나라의 작가에, 제목도 '트위터 탐정 설록수'라니요...?
추리 고수님께서는 책을 쥐어주신 한 손에 제 나머지 손을 포개고 말씀하셨죠.
"마지막으로 읽어보고 그래도 추리를 모르겠다면, 추리계를 떠나도 좋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추리 고수님은 왠지 비장해 보이셨어요.
도대체 이 책이, 이 작품이 뭐라고 그런 크나큰 이야길 하시는지요?
한 손에 쥐면 얇아서 당장이라도 읽어버리고 내던질지 모르는 이 책에 무엇이 있길래 그러시는 건가요?
되묻고 싶었지만 그 이상의 틈을 주지 않으셔서 저 역시 조용히 고수님의 서재에서 나와야만 했습니다.
그 어떤 숙제보다도 무거운 숙제를 주셨더군요.
이대로 추리계를 떠나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게 이 책이라면...
제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읽어야만 했죠.
추리계에 입문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몸이지만 우리나라 추리계만큼 약한 곳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추리 소설은 아무리 애써도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실력 차이 일 수도 있지만, 장르 소설을 환영해주지 않잖아요. 순수문학과 다르다고 선 그어 버리고. 더럽고 지저분하고 뭔가 배울게 없는 취급을 받고 마니까요. 추리계는 그 중에서도 제일 큰 타격을 받는 편이고요. 그러니 읽어봤자 일본 추리계의 아류작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일본 추리계가 우리보다 유명하고 풍부한 소재를 들고 있으니까요.
잘 써봤자 '그거 어디서 본 아류작이야~', 좋은 말로는 '오마쥬'라고 불리겠네요.
별 기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한가지 신경 쓴 건 제목에 나온 '트위터 탐정' 이었습니다.
트위터, 지금은 페이스 북처럼 전 세계가 사용하는 쇼셜 네트웍.
그걸 만든 사람은 때부자가 되어서 살고 있는,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혁명으로 일컫는그 트위터.
세계에 나이며. 인종이나 언어, 성별을 모두 무시하고도 서로가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
특히 인터넷 강국으로 통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없어선 안되는 필수 아이템!
그런 트위터를 들이대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건데?
그러는 사이 저는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겨 나갔습니다.
역시나... 라고 내뱉을 환경.
그랬습니다. 셜록님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지으면 딱! 저거다 싶은
설록수라는 사람은 삼청동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조용하기로 유명한 고풍스런 동네에 허드슨 부인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왓슨 박사님이 되어야만 하는! 김영진군을 베이커 가에서 만나게 됩니다. 왓슨 박사가 실은 셜록님이라는 이야기도 유명한 만큼, 영진군은 설록수의 이야기를 트위터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트위터는 위력을 발휘하더군요.
추리가 필요한 사건을 트위터로 의뢰받기 시작한 겁니다.
필요한 사람들을 스스로가 모으게 만든 신기한 연결 수단의 등장이지요.
또한 설록수와 영진군의 관계는 비틀어 보면 도S와 도M의 관계와 다를게 없더군요. 추리에 대해서라면 절대 뒤지지않게 내밷을 수 있는 설록수에게 추리로는 무력하기까지 한 영진군은 인간의 반응을 살피기에
더없이 좋은 실험체? 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영진군이 매번 당하고? 있는것도 아니더군요.
총명한 설록수와 함께 있으면서 영진군도 성장합니다.
설록수 만큼은 아직도 멀었지만 스스로가 열심히 자신의 이야길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나중엔 설록수를 움직일 수 있기까지 하니까요.
이건 비단 설록수와 영진군의 관계 뿐 아니라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도
성립 됩니다. 트릭을 꼭꼭 숨겨야 하는 작가와 그것을 깨부숴야 하는 독자.
맞추지 못하는 것을 기뻐해야 하는 작가, 얼마나 함정을 피해갈 수 있는가 마음 졸이는 독자. 이 둘의 관계를 잘 끌고 가는 게 승패의 관건인 것도요.
책장이 넘어가면 넘어 갈 수록 추리 고수님께서 이 것이 아니면... 이라는 말씀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추리라는 것은 범인을 잡고, 범인이 사용한 트릭을 밝혀내고 범인이 되어야 한 동기를 알아내야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든 범인을 잡고, 범인이 사용한 트릭이 궁금하고, 동기가 못견디게 알고 싶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 세 가지를 통털어 '재미'라고 하죠. 쫒고 쫒아가게 만드는 호기심. 흥미.
진부하기 짝이없고 사회의 불평등한 이야기만 떠드는 게 아니라, 유치할 땐 제대로 유치해서 저게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해?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과연 자신의 스타일을 부숴가면서 까지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트위터 탐정 설록수는 아마 그런 느낌을 떨쳐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고수님들이 보신다면 눈감고 떡먹기 보다 쉽다고 손을 내저으실테지만,
추리 하수인 제게는 적어도 제 수준?에 맞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수님이 노리신 부분도 그것이 아니신지요? 추리 하수 뿐 아니라 추리계에 입문하지 않은 여러 사람들에게조차 쉽게 추리계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추리 소설을요.
아직도 생각이 짧은 추리 하수의 마지막 추리였습니다.
추리 고수님,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마지막으로 덧붙이며 이만 줄일까 합니다.
추리 고수님은 운명을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거창하게 운명론을 논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추리 하수인 제게 운명은 매 순간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 하나가 틀리면 운명은 한 순간에 바뀝니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추리 고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추리계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지금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도, 설록수와 함께 하는 영진군도 없었을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추리 고수님, 당신과 저는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추리 하수 드림.

추신.
추리 고수님, 고수님은 트위터를 하시는지요?
지금 트위터에 트위터 탐정 설록수의 '봇'이 활동 중입니다.
@serlocksu_bot 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는데....
이러다간 조만간 진짜 설록수를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