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선생님 6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이연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1988년에 출간된 만화를 원작으로 2015년에 개봉한 영화 <기생수>를 보면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CG 기술이 많이 발전했기에 이제서야 영화화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과 함께 시대가 변해도 절대 달라지지 않는 게 있구나 싶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사에 대한 엄격한 윤리 기준 이야기입니다. 호기심 많은 기생수 타미야 료코는 기생수끼리도 임신이 가능한지 실험한 뒤 교사 신분으로 학교에 잠입했지만 혼전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정확히는 결혼 계획이 없어서) 해고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직원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청문회 하듯 둘러앉은 모습이 단순히 30년 전 원작에 충실해서라고 넘기기엔 시대착오적인 게 아닌가 하는 괴리감 같은 걸 살짝 느꼈습니다. 연예인의 결혼 발표엔 자연스럽게 속도위반 기사가 따라붙고, 일반인 사이에서도 아이는 혼수라며 당당해졌는데 말이죠. 여자라서? 교사라서? 혼전이라서? 혼자 키울 계획이라서? 과연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 건지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쓰이더군요.

 

학생들에게 애인과의 임신 사실을 들켜버린 스즈키 선생님 역시 혼자 도덕적인 척, 훌륭한 어른인 척 다 하더니 실망을 안겨줬다는 이유로 아이들에 의해 '스즈키 재판'이라 불리는 학급 회의에 불려 나가게 됩니다. 결혼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뜻밖에도 스즈키를 따르는 아이들에 의해 재판은 계속됩니다. 만일 선생님에게 죄가 없다면 아이들 쪽에 무례함이라는 죄가 생겨버리기 때문이죠.

 

 

아이들은 우선 어떤 점이 문제인지 짚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속도위반 자체가 나쁜 것인지, 책임지고 결혼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지, 그리고 유독 교사에게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말하기 껄끄러운 자신의 가정사를 하나둘씩 털어 놓으며 스스로를 재판에 올리기라도 하듯 옳고 그름을 논하며 생각을 넓혀나가게 됩니다. 아이들의 입어서 튀어나온 '안 되는 이유'들은 저도 은연중에 품고 있었던 기준이기도 해서 작가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 같더군요. 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거기에 커다란 모순이 있었음이 밝혀지는 장면에선 한방 먹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름 탄탄하다고 생각했지만 구멍 투성이의 허술한 논리로 남을 비난하기도 했으니까요. 제가 스즈키 재판에 참여했다면 말문이 막혀 쩔쩔매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5권에서 문제가 됐던 각각의 사정을 인정해버리면 아무것도 얻을 게 없기에 스즈키 재판은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처음엔 감정적으로 시작됐던 재판이 한 가지 문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선 파생되는 수많은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는 깨달음과 함께 점차 이성적인 토론의 장으로 바뀌어 갑니다. 딱히 액션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실에 모여 손들고 일어서서 의견을 말하는 장면만으로도 이렇게 숨막히는 만화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이 압권입니다. 나의 논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 굳이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릴 필요 없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견하면 된다는 스즈키식 교육법이 가장 잘 드러난 6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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