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선생님 1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홍성필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그동안 봐왔던 학원물들은 대개 판타지로 소비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이돌 걸그룹의 쫙 달라붙는 미니스커트 교복이나 조폭과 맞짱 뜨는 화려한 날라차기 기술 때문만은 아닙니다. 청소년의 왕따, 학교폭력, 가출, 임신, 자살 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런 굵직굵직한 사건들보다는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사소하고 한심한 문제들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으니까요. 마치 드라마 속 칠판에 적힌 수업내용을 보고 우리가 저렇게 어려운 공식을 배웠었나 싶은 것처럼 괴리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요즘 초등학교 시험문제는 어른도 풀기 힘들다고는 하지만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만화와 드라마 속엔 어느 정도 공식화된 선생님 캐릭터가 등장하죠. 말 없이 묵묵히 지켜보다가 꼭 필요할 때 최소한의 도움만 주는 교장 선생님, 못마땅한 학생을 학교에서 내쫓으려고 혈안이 되어 음모를 꾸미는 교감 선생님,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고 터프하게 힘으로 억누르려는 학생주임 선생님, 교사라는 직업에 직장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선생님,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로는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혈 선생님이 있습니다. 현실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열혈 교사 캐릭터는 열혈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머리보다는 가슴,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정과 행동이 앞서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생 집에 망치를 들고 들어가서 벽을 깨부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 면에서 <스즈키 선생님>은 경계를 넘는 것에 대해 너무나 조심스럽습니다. 강제력이 점점 줄어드는 교육 현실 속에서 교사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에 대해 사실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첫 에피소드는 급식시간에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를 해서 여학생을 불쾌하게 만든 남자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중2짜리의 장난치고는 유치하지만, 담임인 스즈키에게 따로 불려 간 아이는 당돌하게도 선생님이 이미 이유를 알고 있다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팁니다. 할 수 없이 스즈키 선생님은 사흘간의 시간을 주면 이유를 알아내겠다고 약속합니다. 저희 때 같았으면 당장 엎드려뻗쳐로 끝났을 텐데 말이죠. 첫 날은 그 아이의 식사 모습을 관찰하며 감이 잡힐 듯 말 듯하지만 실패, 둘째 날엔 관찰 대상을 주변에 앉은 아이들에게 옮겨 살펴보지만 또 실패, 마지막으로 셋째 날에 시야를 넓히고 나서야 이유를 알아내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스즈키 본인도 무의식적으로 집착하고 있던 문제였기 때문이죠. 솔직히 처음엔 그게 뭐가 그리 심각한 문제인지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번 째 에피소드인 인기 없는 급식 메뉴 폐지에 반대하는 아이의 고집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죠. 하지만 이 만화를 읽어 나갈수록 저의 시야 역시 좁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행동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던 거죠. 스즈키 선생님은 이면에 감춰진 문제 깊숙이 파고듭니다. 가정교육이란 부모들이 받아왔던 교육이나 경험을 아이에게 짊어지게 만드는 것이며, 다수결이 반드시 아이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최선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스즈키 선생님>에는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에나 나올 법한 사색이 된 얼굴, 경악하는 표정이 자주 나타납니다. 너무 과해서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상황은 무척이나 진지합니다. 그런데 세번 째 에피소드에서는 저도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게 됩니다. 중2 남학생이 친구의 여동생인 초등학생과 관계를 가진 사건이 터진 겁니다. 이 부분에서 거북함을 느끼는 이유는 일본의 성문화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만화가 연재된 기간은 2005년부터 2011년까지로 벌써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스마트폰이나 SNS 따위도 전혀 등장하지 않죠.) 10년이면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현실을 애써 부정하려 했던 저 자신이 너무 구닥다리처럼 느껴져서 경악했다는 게 맞겠습니다. 3권과 4권엔 더 복잡하게 얽힌 성 문제가 기다리고 있으니 스즈키 선생님처럼 '결국 나한테도 오고야 말았구나'라는 각오를 해 두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다행히 스즈키 선생님은 성교육이라는 예민한 문제에 우리가 예상하는 뻔한 대답을 늘어놓지도, 대충 얼버무리지도 않습니다. 학생과 학부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논리로 허점을 파고들어 모두가 잠자코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그들 앞에서 보이는 냉철하고 단호한 모습과 달리 뒤에서는 혼자서 소심하게 끙끙 앓고 있지만 말이죠.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스즈키 선생님의 고민에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여타의 학원물에선 문제를 덮기 바쁜 반면,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이 작품을 학원물이 아니라 교무물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인지도 모르겠군요. 독특한 취향과 도덕관념을 가진 스즈키 선생님이 앞으로 마주치게 될 학교의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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