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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이올린 ㅣ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평점 :
참 묘한 소설입니다. 책을 <검은 바이올린>이라는 제목만 보고 선택해서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데 생각보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글이 길지 않고 단문형식이라 읽기 편할 줄 알았는데 완전 오류였습니다. 문장이 짧은 만큼 압축된 의미를 담고 있어 몇번이고 그 의미를 되새겨야 했습니다.
소설은 천재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요하네스와 천재적인 바이올린 제작자인 에라스무스의 인생이야기입니다. 처음엔 요하네스의 여정이 <연금술사>책을 생각나게 했고, 중간쯤에 에라스무스가 나올 때는 영화 <어톤먼트> 느낌이 나기도 했습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전개와 인간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18세기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명기로 칭송받는 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여성적이고 섬세한 소리를 내어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 악기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비법을 밝혀내려 수많은 이가 노력했지만 여전히 그 비법은 베일에 싸인채 고이 잠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만이 알고 있습니다. 작가의 멋진 필력으로 그 아름다운 악기를 마치 인간의 영혼이 봉인된 것 같은 천상의 음색을 자랑하는 바이올린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잘 묘사합니다.
그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소리” 라는 찬사를 듣는 스트라디바리우스. 그 바이올린을 만드는 크레모나의 도제였던 에라스무스는 어느 날 꿈속에서 바이올린과 같은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던 여인을 만나고 그녀를 닮은 검은 바이올린을 꿈꾸게 됩니다. 그녀를 갈망하고 사랑하게 되어 우연히 현실속에서 그녀를 대면하게 되었지만 사랑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은 자기자신과 사랑을 모두 파괴하게 만들게 됩니다. 꿈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되었지만 소유에 대한 집착은 결국 꿈을, 꿈속에서 그리던 여인을 부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앞뒤를 계속 넘기며 다시 읽어보고 한문장 한문장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글자들 사이에 숨은 여백을 탐색하고 단어 하나 하나에 단서들을 찾아가며 주인공의 마음과 시선을 따라 가보니 검은 바이올린에서 에밀레종의 전설이 생각났습니다. 신성한 종을 만들기 위해 어린아이를 바쳤다는 이야기와 검은 바이올린을 완성하자 악기 소리의 주인공인 여인이 목소리를 잃어버린 점이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두 이야기 모두 결국 영혼을 바쳐 이루어 낸 고귀하지만 절망스런 예술이 되었습니다. 사랑을 잃고 자신마저 파괴된 채 이루어낸 삶에서.. 과연 그가 가진 재능은 축복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