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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힐 ㅣ 스토리에코 2
하서찬 지음, 박선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평점 :
우리는 흔히 아이들의 세계는 초록빛으로 눈부시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성인들에게 지나간 시간은 추억으로 아련하기 마련이고, 좋았던 순간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릴 때 싱그럽고 아름다운 세계를 들여다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샌드힐의 색은 누렇다. 모래는 쌓아도 흩어지고 부서지기 마련이다. 이 책이 다른 여타의 청소년 소설과 다른 점은 유학 간 청소년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찍 유학을 가는 경우는 초등학생 때, 혹은 중학생 때이다. 14세 이전에 가면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린 나이에 세상과 만나게 한다. 그러느라 아이들이 겪을 혼란을 모른 척 한다. 문화적 혼란과 음식, 언어, 인종차별 등으로 인해 겪을 수많은 혼란을 성장기의 통증으로 치부해 버린다. 한국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유학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한국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보내기도 한다. 그 아이가 가서 겪을 혼란은 더 커다란 것일 테지만, 어른들은 모른 척 뒷짐을 진다.
여기 흙으로 적을 빚는 지훈이 있다. 지훈은 한국에서 형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아버지와 함께 중국으로 간다. 얼굴색과 머리색이 같다고 친절한 아이들이 아니다. 지훈은 친구들의 타깃이 되어서 체육 시간에는 골대 대신 인간 골대가 된다. 그러나 선생도 모른 척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국 아이라는 것은, 구타를 당해도 선생들의 골칫거리다.
지훈의 유일한 숨구멍은 라희다.
라희 또한 엄마의 교육열에 의해 중국까지 유학 온 아이이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서, 영어와 중국어까지 배우길 바라는 라희의 엄마. 라희는 한국 유학생 선배들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중국 학생들의 괴롭힘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 지훈은 라희의 얼굴만 봐도 좋다. 흙으로 적을 빚으며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뇌사 상태에 빠진 형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고, 귓속에서 모래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 라희가 명품 지갑을 갖고 싶어 하자 지훈은 지갑을 훔친다. 라희가 웃는다면 지갑이 문제겠는가. 세상이라도 훔쳐낼 지훈이다. 이 나이 때는 작은 일도 크게 다가오고 한 사람이 세상 전부이기도 하다. 그 앞에서 윤리나 도덕, 법은 사라진다. 오로지 좋아하는 사람만이 전부다.
지훈이 훔친 지갑이 하필이면 한국 유학생 선배 백사의 지갑이었다. 라희가 이 선물을 받고 좋아한다.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부터 라희는 지독한 괴롭힘을 당한다. 괴롭힘의 강도가 나날이 거칠고 세지더니, 라희를 옥상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게 만든다. 화가 난 지훈은 기름을 들고 백사의 차에 불을 지르기에 이르는데….
그다음은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
가제본 서평단이라 이 소설을 반만 받은 나는 궁금해서 잠이 다 안 왔다. 작가의 잘못이 크다. 흡입력 있는 문장으로 너무나 잘 썼다. 앉은 자리에서 읽고 한숨을 내쉴 만큼.
최근에 읽은 청소년 소설 중에 단연 으뜸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이런저런 이유로 유학 보내는 우리네 부모들이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눈에 안 보이면 잘 지내나 보다. 마음을 놓고 혹은 문제를 직면하기 싫어서 외면해 버리는 부모들이 봐야 하는 이야기이다. 유학을 보냈으니, 부모가 너를 위해 고생을 하고 있으니, 너는 무조건 그곳에 적응하고 견뎌내야 한다. 이런 부모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짐인지 알아야 한다.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위축되어 견뎌야 하는 아이들은 ‘샌드힐’이라는 무너지는 세계밖에 만들어내지 못한다.
우리는 두렵더라도 그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봐야 한다.
최근에 <소년의 시간>이라는 시리즈를 본 적이 있다. 14세 아들이 친구를 살해할 동안, 부모는 무엇을 하였는가.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아들은 그 시간에 문을 닫고 유튜브로 다른 세계를 배우며, ‘친구를 죽일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샌드힐’의 지훈이 만들어 가는 세계가 될지 모르며, 유학 간 내 자식이 혹은 지금 방 안에 있는 내 아이가 만들어 가고 있는 세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서찬 작가는 ‘청소년 디아스포라’로 박사논문을 쓴 사람이다. 유학 중인 자녀가 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청소년 관련 책을 집필한다. 이런 전문가가 쓴 책이라 신뢰가 간다. 아이들을 안에서 밖에서 들여다본 이 소설을 부모도 청소년들도 다 같이 읽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