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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둘리 가정식
박지연 지음 / 테이스트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집 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 가지 음식들이 있다. 엄마가 끓여준 돼지고기 김치찌개, 얇은 계란말이, 달달한 맛이 조금 강한 멸치볶음, 미역국과 장조림, 슴슴한 김치볶음밥, 꾸덕꾸덕한 카레.. 집 밥이라는 단어와 다양한 추억을 품은 음식들은 언제나 포근하고 담백한 냄새를 풍기며 내 위장과 마음을 양껏 보듬어준다.
<집밥둘리 가정식>은 식당을 하시던 할머니의 음식을 기억하고 사랑하며, 따뜻한 한 끼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 저자 박지연 님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엔 어렴풋이 남은 어머니의 음식과 유년시절 대부분을 함께했던 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녀가 차려낸 소박하지만 모자람 없이 충분한 한 끼로 가득하다.
새벽에 잠이 안 와 “책 한 권 훑어볼까?” 하고 정말 생각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펼쳐놓고 10분도 못 봤다. 이 맛있는 한 끼 사진을 보는게 너무 괴로워서. 아는 맛이 정말 위험한 맛이라고. 큼직하고 쨍쨍하게 인쇄된 음식 사진들을 보는 순간 그 음식의 맛이 상상되는 바람에 조금 더 보다가는 폭주하겠다 싶어 책을 덮었다. 애초에 각잡고 찍은 사진들이니 내가 만든, 엄마가 차려준 100% 자연 그대로의 식탁 위 음식들과 비주얼은 조금 다르지만 익숙한 메뉴들이 많아 보자마자 식욕이 쑥쑥 수직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집밥둘리 가정식>에 담긴 메뉴는 총 71가지다. 첫 챕터에는 익숙하지만 언제 먹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낼 수 있는 돼지고기 김치찜, 두부조림, 소시지 채소볶음, 장조림과 같은 한국인의 밥도둑 반찬들이, 두 번째 챕터엔 돼지고기 김치 솥밥, 마파두부 덮밥, 강된장 덮밥, 장칼국수 등 냄비에 담아내거나 따뜻한 밥 위에 얹어먹을 수 있는 국물 메뉴들이 담겨있다. 세 번째 챕터엔 미국식 오믈렛, 해물크림 리소토, 새우팟타이 등 어렵지 않게 집에서도 외식하는 기분을 낼 수 있는 메뉴들이, 네, 다섯 번째 챕터엔 달걀 샌드위치, 콥 샐러드, 토마토 조개탕, 기름떡볶이 등 나들이와 무겁지 않은 안주류 메뉴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각 챕터의 시작 페이지마다 박지연 작가의 짧은 감상과 각 음식의 페이지마다 적혀있는 팁과 그녀의 추억들을 함께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달걀말이 레시피 위엔 취향에 따라 재료를 더할 수 있는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라는 칭찬이, 콥 샐러드의 레시피 위엔 음식의 시작점이, 옛날 샐러드나 소시지 채소볶음 레시피 위엔 어릴 적 결혼식장에 갔던 기억과 대학 시절 친구들과의 기억이 함께 적혀있다. 단순한 레시피 설명만이 아닌 자신의 마음과 추억을 적절히 섞어 엮어낸 그녀의 정성과 애정이 음식에 감칠맛을 더한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5개의 챕터 중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건 <밥도둑 반찬> 챕터였다. 첫 메뉴로 등장하는 달걀말이와 장조림이 특히 눈에 들어왔는데, 이 메뉴들을 좋아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달걀말이와 장조림을 처음 직접 만들던 때가 나에게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집 식탁에 올라올 땐 몰랐는데 달걀말이란 게 참 어려운 거였다.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쭉- 가족들과 함께 살았고, 맞벌이 가정이었지만 어머니의 노력, 주변 어른들의 관심 덕분에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혼자 밥을 차려먹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식탁 위에 올라오는 기본 반찬이라 불리는 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는데,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한 끼를 차려보려고 하니 그게 참 어려웠다.
고기반찬이나 명절 음식들이 어렵다는 건 알았지만 계란 프라이 예쁘게 부치기, 계란 물 말기..같은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아주 늦게 알았다. 간단해 보이지만 밥 한 그릇을 뚝딱 훔쳐 간다며 좋아했던 메뉴들도 알고 보면 모두 누군가의 정성이고 시간이었다.
집 밥이란 건 참 신기한 것 같다. 매일 먹을 땐 소중한 걸 모르는데 멀어지면 또 가장 그리운 게 집 밥이다. 배달음식은 한번 끊으면 그럭저럭 생각이 안 나는데 집 밥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끊기면 하루하루 더 그리워진다. 음식점에서 배달, 서빙되는 음식들도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겠지만 어릴 적부터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이 담긴 집 밥을 이길 메뉴는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밥상과 닮은 소소하고 따뜻한 한 끼가 가득한 <집밥둘리 가정식>. 오늘 식탁이 고민된다면, 습관처럼 받기만 했던 한상을 직접 차리거나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의 첫 챕터부터 함께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