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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 4 - 진실과 비밀 ㅣ 땅의 역사 4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역사가 입은 비단옷과 짙은 화장을 벗기다’
개인적으로 <땅의 역사 4:진실과 비밀>은 이전 시리즈 <땅의 역사: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에 비해 더 흥미로웠다. 현재 총 4권으로 구성된 <땅의 역사>시리즈 중, 8월 9일에 출간된 <땅의 역사 3: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에 이어 8월 20일 출간된 <땅의 역사: 진실과 비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왜곡된 일부분과 역사에 기록된 순간 그 이후의 어두운 이면, 거룩하지 않아 크게 집중하지 않았던 회색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설과 역사로 남은 사건들 뒤에 이어졌던 기록되지 않은 서민들의 삶과 사대주의와 벼슬아치들에 의해 물속에 잠겨 초라한 종말을 맞은 과학시대. 그리고 보살핌을 받지 못해 이 땅으로 돌아오지 않는 길을 선택한 기술자와 그대로 사라져버린 소중한 기술들. 나와 우리를 핍박하던 자의 무덤을 손으로 다시 매만져야 했던 사람들. 광폭하고 잔인했던 역사의 이면들이 보는 이의 흥미를 자극한다.
앞선 시리즈 <땅의 역사 3: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은 특정 시대와 사건 자체가 낯선 부분도 있었지만, <땅의 역사 4:진실과 비밀>은 반쪽만 알고 있던 역사와 익숙한 장소의 진실, 잃어버렸던 작은 조각들을 주워 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훈민정음의 탄생과 그 이후로 이어진 각성 없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훈민정음’이라는 대한민국의 언어와 국가의 뿌리가 탄생했을 때, 바로 백성들의 삶이 편안해졌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훈민정음의 탄생 이후로 다시 이어진 ‘각성 없는 시대’에 대한 기록은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없다. 백성들이 세상을 돌아보고 살 여유를 만들어줄 가장 쉽고 효율적인 문자가 아주 오래전에 세상에 공포되었지만 1771년 아주 더운 여름날, 서점 없는 나라의 어떠한 궁에선 발가벗겨진 채 죽음을 맞이한 책 장사들이 있었다. 밭이 아닌 세상을 둘러볼 여유를 없애고 농사나 나라에 대한 충성, 효만을 강요하던 서점 없는 나라였던 조선의 기록이 너무도 안타까웠고 이러한 지식의 독점과 억압의 역사가 언젠가 다시 반복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이 외에도 이득과 규율이 충돌하던 세상에서 첨단 요업 기술자가 기술과 함께 굶어죽으며 시대와 기술의 아귀가 맞지 않게 된 역사의 일부분과 목 달아난 불상을 뒤로하고 산릉 작업에 투입된 승려들, 조작된 신화가 없어도 이미 영웅인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무게를 담은 기록, 돌아오면 안 될 텅 빈 시대에 대한 기록들이 각각의 이름을 가진 5개의 챕터에 나눠 적혀있다. 책을 읽으며 주목받지 못한 비밀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조작된 신화가 가졌던 진짜와 다른 가벼운 무게감, 텅 빈 시대에 대한 분노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억이 추억이 되고 추억은 역사가 된다. 쓰린 추억도 추억이고 아픈 역사도 역사다.”
<땅의 역사>시리즈를 접하지 않았다면 올해도 모르고 넘어갔을, 어쩌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까지도 몰랐을 역사의 다양하고도 밋밋한 민낯이 이젠 낯설지 않게 가까이 다가온다. <땅의 역사>시리즈는 화려한 화장과 부드러운 비단 옷을 챙겨 입고 있던 역사의 진짜 얼굴들을 공개하며 독자와의 거리감을 좁힌다.
이 책은 아픈 역사라고 그것을 걸러내지 않으며, 거룩한 기록 뒤에 숨겨진 비밀에 ‘진실’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껏 몰랐던 역사의 새로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완벽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도 마찬가지다. 실수가 있을 수도 있고, 모든 순간이 찬란하고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아프고, 어두운 시간이라 칭하며 이 기록을 지워선 안된다. 아니 오히려 더 잘 알아야 한다. 빛나는 역사가 있으면 그 뒤로 묻혀버린 어두운 역사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해냈어’라고 말하는 순간과 더불어 그 뒤에 숨겨진 이면을 알아야 발전 뒤에 숨겨진 실수와 누군가의 슬픔을 다시 반복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진실과 비밀을, 역사의 여러 얼굴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