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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낭만적 밥벌이 - 89년생 N잡러 김경희의
김경희 지음 / 밝은세상 / 2021년 7월
평점 :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우리의 이야기’
어릴 땐 20대 중반쯤이 되면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깔끔하게 다려진 옷을 입고 멋있는 명함을 하나쯤 갖고 있으며, 계약도 척척해내고 일도 빠르게 해결하면서도 자아실현을 위한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는... 직업이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20살의 중반을 넘어 거의 후반으로 넘어가고 있는 나는 헐렁하고 편한 옷이 최고라며 그 옷들을 주워 입고, 변변한 스펙도 어디 가서 당당하게 자랑할만한 직업도 없다. 그저 매일 “출근하기 싫어~”, “일하기 싫어~”를 반복하고 있는 계약직일 뿐이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20대. 하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백수일 땐 일을 하고 싶었다. 당당히 돈을 벌어 취미생활과 덕질에 쓰고 싶었고 하다못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할 명분이 있어 반강제로 부지런할 수 밖에 없는 삶이 부러웠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매일같이 출근을 시작한 후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외친다. “아 일하기 싫어~” “퇴직하고 싶다.”
어느 날은 이런 내가 간사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렇게 돈 벌고 싶다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 자기 계발도, 부지런함도 모두 놓쳐버리고 맨날 투덜대기만 하는 나. 이래서 멋진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건가?.
이런 현타를 수십 번 반복하며 출근을 해내고 나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메신저를 통해 함께 일하는 분들, 어디선가 나와 같은 시간대에 노동을 하고 있을 친구들과 ‘오늘 일하기 싫음’에 대한 공감 토크와 어딜 가도 발생하는 회사에 대한 불만 토크 나누기. 이렇게 노동자들끼리의 공감을 나누고 나면 약간의 위로가 찾아온다. ‘나만 일하기 싫은 건 아니구나.’
나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낭만일까 현실일까. 자아실현일까 밥벌이일까. 일의 주체에 내가 있을까? 돈을 좇아야 하는 걸까? 아직 그 사이에서 끝없이 시소를 타고 있는 나에게 <비 낭만적 밥벌이>라는 책 제목은 엄청난 궁금증을 불러왔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만큼 공감이 가는 책은 없었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하고, 멋진 차를 몰고 어디든 척척 다니는 꿈을 꿨었고, 가끔은 전부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돈’을 쫓다 아차 싶었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는 청년의 삶. 아니, 모든 어른의 삶.
<비 낭만적 밥벌이>는 김경희 작가에 ‘일’에 대한 고찰을 담은 에세이다. 작가이자 오키로북스의 전문 경영인으로 통하는 그녀. 100만 원으로 시작한 첫 월급 이야기부터 한사람 몫의 월급도 겨우 나오던 서점을 몇 배로 키우고, 전문 경영인으로 인정받은 이야기, 작가로서 겪은 무례한 질문과 고민들, 그리고 수많은 ‘일’들을 거친 후 내리게 된 결론까지. 작고 작은 일을 하고 있는 사회인인 내 눈에 작가님은 ‘거침없고, 즐기며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일단 책을 내신 것부터 성공하신 것..이라 생각했다..) 내 기준 ‘성공’을 한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고민을, 비슷한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는 사실에 진한 공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세세한 고민과 그 정도는 다르지만 결국엔 비슷한 것 같다.
“몇 번의 경험 후에는 일의 재미, 의미, 돈 셋 중에 아무것도 충족하지 못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너무 돈,돈 하는 거 아니냐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제안하면서도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나의 시간과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어른이 되어 첫 번째로 해내야 할 일은 사회에서 1인분의 몫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건 보통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같은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을 괴롭히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두 개는 사람을 살살 긁어내는 ‘열정페이’와 왠지 멋진 것처럼 포장된 ‘워커홀릭’. 사실 말이 좋아 워커홀릭이지 무상 야근.. 결국 어느 부분은 열정페이와 이어진다.
열정페이를 강요받던 때,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 달에 30만 원을 받으며 주 5일을 일해도 일하며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고, 당연하게 법적으로 보장받게 되어있는 얼마 안 되는 주휴수당을 요구할 땐 ‘요즘 것들은 잔머리만 늘어서 다 챙겨 먹으려 든다.’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당연하다며 참고 살았지만, 몇 년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의 노동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내 능력과 힘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대가를 주지 않으려는 사람에겐 앞으로도 답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 번 더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다. 너무 돈, 돈 거리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지만.. 돈이 없으면 일에 대한 열정은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
“‘일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돈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일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남들처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보다는 이왕이면 내가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다. 아니면 하다못해 다른 취미에라도 열정을 태울 수 있는 경제적 보탬이라도 되는 일을 선택하든가.. 그렇다고 ‘일’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좋지 않다. ‘일을 많이 하고 결과를 내야 한다.’, ‘모든 건 내 책임이다.’라는 너무 무거운 짐을 지는 건 내 손해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게 말로는 참 쉽다. 마음은 생각만큼 덤덤하고 단단해지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긍정과 부정의 선을 오간다.
어느 날은 그냥 이 일이 하기 싫고, 왠지 내가 손해 보며 사는 것 같고, 내일 당장 관두고 싶다가도 또 어느 날은 나름 괜찮은 것 같고, 할만한 것 같고 재밌는 것 같은 날이 있기도 하다. 급여가 들어왔을 땐 기쁘고, 급여를 받은 지 2주쯤 지나면 불행하다. 이런 내가 하찮고 웃기게 느껴지면서도,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불안해하는 내가 어이없기도 하다.
결국 일이란 항상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나를 위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즐기는 것 같으면서도 지독하게 싫고, 나에게 자신감을 주면서도 어느 날은 자존감을 팍팍 깎아먹고, 모든 손해를 보더라도 잘하고 싶으면서도 인생을 손해 보는 것 같아서 관두고 싶은. 그럼에도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것. 나에게 일이란 그렇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낭만적이면서 낭만적이지 않은.. 그런 건 아니다. 열심히 하고 싶을 때는 있지만 낭만적이진 않다. 야행성인 내가 아침부터 일어나야 한다는 것부터 낭만이 없다. <비 낭만적 밥벌이>. 어쩜 이렇게 찰떡같은 비유가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