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갈증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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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한 빛깔의 청록의 원피스에 연두색 긴 양말을 신고 피아노 대회에 나섰던 꿈을 말하면서 ‘윤조’가 떠오른다고 하는 ‘나’. ‘나’가 들려주는 윤조의 이야기에 빠졌다. ‘네가 나를 헷갈려 해도 내가 윤조 너를 잊을 수야 없지. 인파가 넘치는 거리에서도, 나는 단박에 너를 발견하고 팔목을 붙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 나는 너의 손톱을 깎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어떠어떠한 사람‘에서 ’어떠한‘은 많을수록 좋지만 쉽게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지.(15쪽)’라고 한다. 손톱을 깎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니. 손톱을 깎아주는 행위는 매우 친밀하고 위험하다. 타인이 나를 믿는다는 전제하에 시작할 수 있는 행위라 생각한다. 손을 내민 사람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타인에게 온전히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손가락 사이에 준 힘을 빼고 상대방의 경쾌한 소리를 듣는 일이다. 이쯤되니 ‘나’에게 윤조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나는 프롤로그가 끝나고 나서야 ‘나’와 윤조 사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그림책을 읽을 때 단내가 나는 것처럼 네 손을 잡고 있으면 안심된다고 생각한다(60쪽). 툭하면 울어버리는 엄마와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언니 사이에서 얻을 수 없는 안심을 다른 사람에게서 얻고자 했다. 헤어진 연인인 명은 이것을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203호 할머니가 말하는 산 역시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욕망하기 마련인데, 우리 세 사람이 욕망하는 건 다르게 보면 다르지만 또 비슷하게 보면 비슷한 것도 같았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도 사랑에 포함된다면.(97쪽)’이라고 하며 엄마와 언니, 자신에게 비어 있는 무언가를 생각한다. 다만 그 생각의 끝에는 계속해서 물을 마시는 ‘나’가 있을 뿐이었다.


‘나’의 가족은 진짜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103쪽),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삼킨 채 겉돌기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 사이를 접착제처럼 착 붙이고 분위기를 좋게 바꾸는 윤조가 나타나게 되면서 집안의 흐름이 달라진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다. 공원에서 연을 날리는 사람을 보면서 ‘실패를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야 할 텐데(123쪽)’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실패라는 단어가 중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연의 실감개일수도 있고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실패(失敗)한 것이라 말하는 걸 수도 있다.


‘나’가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든다. 뒤집어엎었다던 이 소설을 계속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준 최미래 작가님께 감사하다. 소설에 몇 차례 등장한 「설탕으로 만든 사람(아니카 에스테를/비룡소)」은 실재하는 그림책으로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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