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1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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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노볼>은 영하 40도가 넘는 추운 바깥세상과 따뜻하고 풍요로운 스노볼로 나뉜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스노볼에 들어가려면 '스노볼 액터'가 되어야 한다. 액터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바깥세상에서 춥게 지낼 수밖에 없다. 스노볼에 사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발전기를 돌리면서 말이다. 누군가의 삶을 위한 삶이 바깥세상 사람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스노볼 액터 중 인기 최고 '고해리'는 채널 60번에서 온종일 볼 수 있다. 고해리는 액터이지만 액터가 아니다. 액터는 말 그대로 연기를 하는 배우인데, 고해리는 자신의 일상이 그대로 송출되기 때문이다. 영화 <트루먼쇼>를 봤다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빠를 거라 생각된다. 고해리가 나오는 방송을 편집하는 디렉터 '차설'은 이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디렉터가 없으면 액터도 없고, 액터가 없으면 디렉터가 없을 정도로 디렉터와 액터의 사이는 끈끈하다. 차설과 고해리가 바로 그런 사이이다.


스노볼 1권에서는 전초밤이 스노볼 실세 이본 그룹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중심이라면, 스노볼 2권에서는 고해리들을 중심으로 짜인 드라마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전초밤'은 이름부터 특이하다. 초여름 밤을 줄여 '초밤'이라 지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외면하는 조미류(전 액터)를 살리기 위해 추위에 죽을 뻔한 위험도 무릅쓰고, 편안한 생활 대신 가여운 고해리를 위해 비밀을 공개하는 등 아닌 척 따뜻하고 의리도 있다. 물론 초밤 역시 고해리가 되어 안락한 스노볼의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밤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비밀을 터뜨리고 자유를 얻고자 했다. 전초밤 그리고 해리들을 통해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나'일 수 없다면 평생을 거짓과 고독 속에 살아야 할 수도 있다. 해리들, 응원해.


스노볼과 같은 세상이 실존한다면 나는 어디에 위치해 있을지 생각해 봤다. 요즘처럼 추운 날엔 따뜻한 게 최고이긴 하다. 포근한 스노볼 안에서 맛있는 음식 잔뜩 먹으면서 편안한 매일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스노볼에서 살려면 모든 일상을 공개하는 액터가 되거나 그런 액터를 잘 섭외해 드라마를 만드는 디렉터가 되어야 한다. 괴롭다. (나는 아마 바깥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어디에 살든지 결국은 자신의 생각이 중요하다.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다만 내가 덜 후회할 수 있는 쪽으로 선택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외부의 변화에 휩쓸려 나를 잃지 않도록 주의하며, 어디에 있든 행복하길 바란다. 해리들도,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이 일은 초밤 양만이 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게는 더 고민하고 망설일 것이 없었다. 누가 올라타든 상관없이 빙빙 돌아가는 쳇바퀴의 삶이 아니라, 나만이 완성할 수 있는 인생이었다. 오로지 나만이, 해리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 - P60

내일은 사과할 수 있을까. 네 삶을 훔쳐서 진심으로 기뻤다는 사실을. 나는 이 상황의 피해자가 아니고,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라는 걸, 고백할 수 있을까?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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