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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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는 자폐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시선에서 정상/비정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저자인 엘리자베스 문은 장애인·노인·여성 등 소수자성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끔 한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해온 것이 과연 정상이 맞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소설은 루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루는 자폐증이 사라지기 전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이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도 치료하는 기술이 나왔다. 심지어 뱃속에 있을 때 검사를 통해 자폐증을 원천 차단한다. 하지만 루는 이미 태어났고 자폐증을 없애는 치료를 받지도 않았다. 루는 정기적으로 포넘 박사를 만나 테스트를 받는다. 주로 사회성과 관련된 질문이다. 어린 시절의 루에게는 어려웠을 대화가 어른이 된 루에게는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대화로 나온다. 사람들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때는 이런 감정,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저런 감정이라는 걸 알 수 있게끔 학습되었다.


"그리고 자네는 이걸 다 이해하고 있고?"(p. 39) 상사 크렌쇼는 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다. 크렌쇼가 등장할 때마다 '누가 누구더러'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비겁하고 치졸하다. 위험에 빠진 사람에게 걱정스러운 말 한마디 못 할망정 "루, 지금 허비한 시간 보충해."(p. 297) 같은 소리나 하고 말이다. 포넘 박사나 돈, 킴벌리 부인 등도 편견으로 그를 대한다. "평소에는 다정하게 굴면서, 오늘은 그 뚱뚱한 책을 가지고 왔잖아요. 정말 그 책을 읽고 있는 건 아닐 텐데."(p. 308) 같은 말을 한다. 루가 받았을 상처에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루에게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태도에 화가 났다. 숨 쉬듯 너무 자연스럽게 말한다. 욕도 서슴지 않는다.


세상에 루를 비난하는 사람만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루의 강점을 찾아주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응원한다. 루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늘 지지한다. 물론 캐머런처럼 수술을 바라는 자폐인들도 있다. "나는 늘 정상이 되고 싶어. 늘 그랬어. 다른 게 싫어. 너무 힘들어. 사실은 같지 않은데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척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지쳤어."(p. 382)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변화를 원하지 않는 루도, 변화를 바라는 캐머런도 정상이다. 다만 그 선택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비난하고 바꾸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이다.


남과 다르다는 건 생각보다 많이 외롭고 힘들다. 편견을 이겨내고 나아가야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정작 편견을 경험해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대학시절 멘토링 활동으로 만난 자폐 아동이 있다. 그 아이는 영화 포스터 모으는 걸 참 좋아했다. 방안 곳곳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다.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인데, 정작 영화는 볼 수 없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려면 불 꺼진 어두운 공간에서 2시간 정도를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어두운 것도, 가만히 있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장면에서는 대사를 따라 말한다.


그날 아이와 나는 영화를 30분밖에 보지 못했다.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에서 대사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누구야!!!!!!!!! 누가 말해?"라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란 아이는 그대로 뛰쳐나갔다. 나는 뒤따라갔다. 진정되지 않는 아이를 쫓아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려갔다. 그날,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참 전 일인데도 말이다. 소리친 그 사람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생생한 한 장면으로 남은 그날 일은 나에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아이와 가족에게는 어쩌면 평생에 걸쳐 반복될 일이다. 그건 누군가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소설에서 사람들이 규정한 '정상'으로 가는 길이 생겼는데 그 길로 들어설지 말지를 고민하는 인물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다수에 속하자니 그동안의 나를 부인하는 것 같고, 소수로 남아있자니 불이익이 떠오르고. 어떤 선택이든 쉽지 않다. 어렵고 어렵다. 나는 그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언젠가는 자폐도, 다른 장애도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수술을 권유할까, 아니면 그냥 그들을 인정하고 살아가기를 바랄까?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김초엽 소설가의 말처럼 '비정상으로 분류된 이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 알게 , '오랫동안 잊을 없는 질문' 남긴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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