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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자들의 여왕 1 ㅣ 뱀파이어 연대기 3
앤 라이스 지음, 김혜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 저주받은 자들이란 결국 뱀파이어들을 말하는 거겠죠. 뱀파이어 연대기 세번째 이야기인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은 제목답게 여왕에 대해서, 그리고 뱀파이어의 기원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지켜야 할 자들'이라는 고대의 뱀파이어 엔킬과 아카샤. 그들은 끊임없는 피의 샘이자, 뱀파이어의 부모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식들에 대해, 뱀파이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살아온 그들은 이제 피를 마시는 일도 거의 없고, 움직이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조각같은 모습으로 앉아 그곳에 존재할 뿐이죠. 아르망의 부모였던 뱀파이어 마리우스는 지켜야 할 자들을 지키는 수호자로 몇 천 년간을 지내왔습니다. 언젠가는 그들을 깨울 수 있는 자가 자신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들을 깨운 건, 사랑스러운 뱀파이어 왕자 레스타였습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뱀파이어들은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쌍둥이의 꿈을 꿉니다. 그들이 쫓기고 도망치다 결국 고초를 겪는 모습이 가득한 꿈을 말이죠. 그 꿈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알지 못한 채 의아함과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거기에 드디어 깨어난 그들의 여왕 아카샤가 다른 뱀파이어를 학살하며 레스타를 납치해가자, 두려움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결국 뱀파이어들은 한데 모여 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그들이 꾸는 쌍둥이에 대한 꿈은 무슨 뜻일까요?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인 아카샤는 어째서 레스타를 데리고 간 걸까요? 그녀가 레스타와 함께 이루려는 꿈은 무엇일까요?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에 대한 독후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심한 페미니즘이 보여 불편했다는 내용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그 독후감처럼 이 책에서는 아카샤의 생각에서 강한 페미니즘이 보입니다. 그녀는 말하죠. 이 세상에 남자들이 없다면, 결국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세상은 평화로워 질 것이다. 에코 페미니즘 계열에서 보이는 의견과 흡사한 구석이 있는 아카샤의 말은, 얼핏 맞는 것 같지만 궤변이 아닐까요? 남성이 없어진다고 해서, 남성성이 사라진다고는 생각지 않거든요. 여자들만 남는다고 해도 또다시 싸움과 전쟁은 시작될 겁니다. 결국 싸움과 전쟁은 이기고 지는, 빼앗고 빼앗기는 행위입니다. 여자들이 그런 욕구와 욕망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지금 여자들이 약자로 지며 빼앗기는 역할에 많이 처한다고 해서, 남자들을 없애면 된다는 논리는 억지가 아닐까 싶어요.
어느샌가 존재하고 있던 것처럼 느껴지는 뱀파이어. 우아하고 아름다운 밤의 귀족이라는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가. 뱀파이어의 존재는 갑작스러운 듯 싶지만, 결국 시작이 있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겠죠.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는 뱀파이어의 세계를 창조했지만, 그럼으로서 뱀파이어의 한없는 신비로움을 빼앗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세번째 이야기였습니다. 과학으로 인해 신비가 죽었다. 뭐 그런 비슷한 말이 있던 것 같은데, 애매하지만 그런 느낌과 비슷합니다. 아카샤와 엔킬에까지 올라가, 유령에 대한 이야기와 빨간 머리 쌍둥이를 내세운 이야기는 뱀파이어에 대해 작가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느낌이 강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아쉽습니다. 여전히 뱀파이어들은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우아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뱀파이어로 간택되어진 이들도 많고요. 그들이 우왕좌왕하며 한 자리에 모여 고민하는 모습은 상당히 즐겁기는 했습니다.
결말에서는 시리즈가 이어질 거라고 못을 박고 있네요. 탈라마스카라는 매력적인 집단과 레스타는 과연 다시 만날까요. 데이비드에게 레스타는 영생을 주게 될 것인지. 역시 레스타는 악동입니다. 어리석고 대담하며 무서운 게 없는, 사랑스러운 뱀파이어 왕자. 그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마저도 그에게 매료된 것이겠죠. 그를 사랑하는 루이스는 말할 것도 없고요! 마지막 14페이지 정도가 씁쓸한 이 이야기에 달콤한 마무리를 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시리즈에 대한 예고와 함께 말이죠.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스토리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 없던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