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모형의 밤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나카지마 라모는 오늘 밤 모든 바에서, 가다라의 돼지 등 상당히 특이하면서 재기발랄한 작품을 써낸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만큼이나 일생 또한 특이했는데, 그는 소설가, 에세이스트, 연극 각본가, 연극배우, 록 밴드의 보컬, 광고 카피라이터 등으로 종횡무진 활동했다고 합니다. IQ 185에 태어난 지 9개월일 때를 기억한다는 천재로 명문 중고교에 높은 성적으로 입학했으나 고교 시절부터 히피처럼 머리를 기르고 학교에 가지 않은 채 술과 약물에 절어 지냈다네요. 그의 삶은 '나는 계단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라는 생전의 말처럼 계단에서 굴러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력만 보아도 절로 작품이 궁금해지는 작가가 아닐 수 없죠.

그의 단편집인 인체모형의 밤은 어떤 소년이 목저택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소년은 보통의 집과 달리 전혀 실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듯한 이 목저택-미친 학자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에 안녕을 고하러 들어갔다가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인체모형이라기에는 너무나 기괴한 모습의 '갈라테이아'를 말이죠. 미친 학자가 피그말리온이 되어 만들었다는 이 갈라테이아의 가슴에 귀를 바싹 대자, 이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옵니다. 이러한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여러 단편이 이어지는데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흥미진진합니다. 호러 단편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상당히 다채롭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네요. 때로는 오싹하고, 때로는 살짝 감동적이기도 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안은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온다는 파란 눈 이블 아이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마지막 줄이 의미심장하네요. 세르피네의 피는 낙원처럼 느껴지기만 하는 섬에 얽힌 비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아름다운 꽃이 입을 쩍 벌리자 그곳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게걸스러운 입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굶주린 귀는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처럼 결말의 한 줄에서 오싹해지더군요. 건각-국도43호선의 수수께끼는 훈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싸늘해진 코는 괴담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결말에 나오는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카코의 위주머니는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개고기에 대한 얘기를 보며 예전 개고기 논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인간이란, 혹은 동물이란 자신이 살기 위해 무언가를 희생시켜야만 하는 운명인 걸까요? 마지막 이야기인 날개와 성기는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단편이었습니다.

12가지의 흥미진진한 단편들은 제각기 다른 느낌을 줍니다. 작가의 생애에 대해 읽고 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카지마 라모란 작가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네요. 확실히 다른 맛들을 지닌 단편이지만 재미는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읽고 에필로그를 읽으니 소년의 행동이 절로 이해가 갑니다.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저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와 같은 행동은 못하겠지만 말이죠.

짧은 단편집이기에 내용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피하다보니, 빈 수레같은 서평이 되었네요. 인체모형의 밤은 짧은 단편들이지만 충분한 재미를 가지고 있고,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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