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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ㅣ 아토다 다카시 총서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아토다 다카시는 나폴레옹광이라는 작품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광보다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와 시소게임을 먼저 접해 그의 스타일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탓인지 나폴레옹광을 읽었을 때에는 살짝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반전의 강도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작품의 질(이라고 해야할지 나쁜 어감인 거 같지만 딱히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네요)이 떨어진다거나 한 건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광은 후에 리뷰를 쓴다면 그 때 언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사실,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는 아토다 다카시라는 작가와 이 작품에 대해 알고 있지 않다면 오싹한 반전이 담긴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죠. 마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처럼 말입니다.
(*표지가 제목과 더불어 독자를 속이는 데 단단히 한몫한 희대의 낚시 추리소설. 참신함이 돋보이는 반전으로 유명하다.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은 읽어보시라.)
이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무난하게 시작합니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네의 이웃과도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때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들은 살의를 참지 못하기도 하며, 기이한 일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기묘한 나무는 좀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다고 여겨졌지만, 이 단편 또한 반전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욕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더군요.
보통 무서운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귀신이 등장합니다. 현대의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거나 하죠. 혹은 그 존재의 출연만으로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토다 다카시의 이야기는 오싹하긴 하나 초자연적인 존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유령이나 귀신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파생되는 살의이며 현실입니다. 아토다 다카시는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를 서술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결말에 이르러 헛웃음 혹은 스쳐가는 오싹함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무섭다고 할 수 있겠죠. 책을 읽으면서 내 주위에, 혹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웃으며 즐길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현대 사회의 악몽으로 가득 찬 모습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무난한 표지에 대해 의문을 갖다가 문득 제목 밑에 그려져 있는 작은 무언가에 시선이 갔습니다. 분명 표지를 보는 사람들 중 그 작은 그림에 신경쓰는 이는 별로 없지 않았을까요.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가볍게 생각하면 냉장고에 사랑을 담는다는 게, 훈훈한 가정을 그리고 있어 냉장고에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음식들이 들어있었다- 라는 그런 내용이라 추측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살짝 표지가 아쉬운 책 중 하나입니다. 책을 다 읽는다면, 이런 무난한 표지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니! 하고 본문의 담담한 서술과 함께 뒷통수를 가격하는 한 줄의 반전과도 비슷하다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 표지로 냈어도 좋지 않았을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