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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표지 또한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려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느낌입니다. 검은색을 베이스로 하여 요염한 화풍이 내용과 관련된 요소를 표지에 수놓고 있는 것에 감탄할 수밖에 없네요. 어딘가 으스스한 분위기도 배어나온다는 평도 있던데,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이 마냥 밝고 긍정적인 내용이 아닌만큼 내용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칭찬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삼수탑은 나오기를 고대하다 바로 구입했습니다. 지금에서야 리뷰를 쓰고 있지만, 읽은 것은 꽤나 된 소설입니다. 여왕벌 이후에 어떤 작품을 낼까 궁금했는데 삼수탑이라는 제목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언제 나오나 목을 빼고 기다렸습니다. 결국 손에 쥐게 되자 너무 궁금해서 바로 펼쳤네요. 다른 작품들보다 술술 읽히는 내용으로, 굳이 따지자면 팔묘촌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삼수탑의 주인공은 미야모토 오토네라는 여자로, 어린 시절 양친을 잃고 백부의 양녀가 되어 아름답고 정숙한 규수로 성장합니다. 어느날 그녀는 먼 친척인 겐조가 백 억 엔에 이르는 유산 상속인으로 자신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단 상속을 받기 위해서 그녀는 겐조가 지정한 수수께끼의 남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그러던 중 백부의 회갑연에서 오토네의 정혼자라는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이럴 경우 유산은 오토네를 포함한 겐조의 혈육에게 나눠주기로 되어 있습니다. 겐조의 혈육들은 하나같이 기괴한 느낌의 사람들로, 유산을 탐내며 각자 은밀히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그들은 하나 둘씩 차례차례 살해당합니다. 오토네는 그 용의자라 의심을 받고, 이리저리 떠돌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오토네는 '삼수탑'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삼수탑의 사진을 본 그녀는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에 사로잡히고, 결국은 삼수탑으로 향합니다.
삼수탑은 트릭에 중점을 두고 읽어나가는 엄격한 독자라면 읽고 던져버릴지도 모르는 종류의 소설입니다. 삼수탑은 주인공인 미야모토 오토네의 1인칭으로 전개되며, 따라서 그녀의 심경과 행동들이 주가 되어 서술됩니다. 오토네는 아름답고 정숙한 규수라는 말에 걸맞게 조신한 처자였지만, 의문의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녀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스스로를 동정하며 서술하는 장면은 오래된 연애소설을 생각나게 합니다. 촌스러운 느낌도 조금 있습니다.
결말에 이르러서도 연쇄살인의 트릭은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으며, 트릭의 진상보다는 지금까지 의문의 남자에게 몸과 마음이 이리저리 휘둘리던 오토네가 결국 진상을 알게 되어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는(이것은 커다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두루뭉실하게 표현함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사실이 더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아아, 역시 그랬어- 하면서 독자도 마음을 편히 놓게 된다고나 할까요.
특이한 점은 긴다이치 코스케가 마치 악역처럼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뒤집히지만, 오토네의 입장에서 본 긴다이치 코스케는 이상하고 수상한 남자입니다. 그 점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역시나 이번에도 살인을 막지 못하고 후에야 '사실 전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시작하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 트릭에 신경쓰지 마세요. 그렇다면 삼수탑을 읽고 별 한개도 아깝다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제목에 쓴 대로 추리소설의 탈을 쓴 로맨스 한 편을 읽은 느낌을 줍니다. 그것도 상당히 오래전에 쓰여진 연애소설 말이죠. 띠지에 쓰여있던 '이것이야말로 요코미조 식 로맨스, 책략과 역전의 연발! - 세나 히데아키, 소설가' 가 정확히 들어맞는 소설입니다. 요코미조 식 로맨스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