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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좋아하는 작가가 여러 명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아야츠지 유키토입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읽고 팬이 되었네요.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스터리와 함께 호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십이국기, 마성의 아이, 시귀 등의 작품을 쓴 오노 후유미의 남편이기도 하죠. 오노 후유미 또한 엄청난 필력으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입니다. 팬들이 부르는 호칭은 무려 주상이죠. 그녀의 작품들에서도 호러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이 여럿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며 친구와 오노 후유미와 아야츠지 유키토는 참 취미가 잘 맞을 것 같다는 둥 똑같은 사람끼리 만났다는 둥 우스갯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암흑관을 보면 그 구조도를 오노 후유미가 그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어쩌다보니 관시리즈보다 먼저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에 대한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을 얼마 전에 다시 읽었기 때문입니다.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을 펼치면 눈이 끝없이 내려 만들어낸 설원이 등장합니다. 극단 암색텐트의 단원들이 길을 잃고 키리고에 저택까지 당도하는 것이 초반의 내용인데, 그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감탄하던 설원이 점차 공포의 대상으로 변화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새하얀 설원과 그 위로 계속 쌓이는 눈. 그런 풍경을 떠올리며 읽으려면 겨울에, 그것도 눈이 오는 날에 읽어야지! 라는 미련한 생각으로 인해 얼마 전에 꺼내들어 읽게 되었습니다.
극단 암색텐트의 단원들은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는 중에 차 고장으로 인해 걸어가기로 합니다. 그러던 와중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길을 잘못 들어 이리저리 헤매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다 키리고에 저택을 발견하고, 단원들은 저택에 사정하여 그곳에 잠시나마 머무는 것을 허락받습니다. 키리고에 저택의 주인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고용인들은 감시의 눈빛을 보내며 딱딱한 모습을 고수합니다. 키리고에 저택은 높은 가치를 지녔을 듯한 골동품, 수집품이 가득한 저택입니다. 저택을 둘러보던 그들은 각자 이름에 관계된 물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재미있어 합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신세를 지고 있던 노의사와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죠. 그렇게 저택에 머물던 중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관 시리즈 중 암흑관의 살인과 이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은 분위기가 반은 먹고 들어가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본격의 기수라는 아야츠지 유키토지만, 이 두 작품은 어두우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가 일품입니다. 사실 트릭에 기대하여 읽는 독자보다는 어딘가 기이하고 기괴한 저택, 어두운 분위기. 클로즈드 서클. 이런 키워드에 반응하는 독자가 읽으면 만족할 것 같은 소설입니다.
길을 헤매다 저택이란 클로즈드 서클에 갇히게 된 인물들의 처지에 독자들은 감정의 이입을 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독자들에게도 키리고에 저택은 갑자기 떡하니 나타난 이상한 저택이거든요. 인물들이 저택을 돌아다니며 저택에 대해 감탄하고, 구조를 알아가는 것으로 독자들도 저택에 대해 자연스레 알아가게 되죠. 키리고에 저택은 저택 가득 어두움을 내포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활기가 전혀 없습니다. 고용인들은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며 경고나 줄 뿐이죠. 불편해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깍듯하게 손님 대접을 합니다. 음험한 키리고에 저택은 말 그대로 이상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마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예고하고 기다리는 듯이 말이죠.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탐정의 역할을 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은 추리소설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또 한번의 반전을 꾀했던 건지 마지막에 누군가(미리나름이라면 미리나름이기에 누군가로 지칭하겠습니다)가 나와 진상을 얘기하는 것은 새롭긴 했으나 어딘가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짝 미묘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트릭이나 진상보다 키리고에 저택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 읽은 탓인지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