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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1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지허'도 법명이 아닌 필명이라 언제 출가를 했는지도 묘연합니다. 서울대라는 말도 있지만 분명치 않습니다. <선방일기>는 지허스님이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10월 15일부터 1월 5일까지 진행되는 동안거를 난 이야기입니다. 안거란 일 년 네 철 중에서 여름과 겨울철에 산문(절) 출입을 금하고 수도에 전력함을 말합니다.
처음 선방에 입방할 때 조실스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받습니다. 화두란 참선할 때 정신적 통일을 기하기 위해 붙드는 하나의 공안입니다. 세상에 화두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종류가 무한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서 자기에게 필요한 화두는 단 하나입니다. 단 하나일 때 비로소 화두라는 결론입니다.
초하루 보름의 별식 찰밥과 만둣국을 도에 넘치게 먹고 체하는 스님도 있습니다. 감자를 몰래 구워먹기도 합니다. 자신의 묵상법이 맞다고 언쟁하기도 합니다. 만두를 빚을 때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흉내 내 빚기도 합니다.
동안거의 절반이 되는 섣달에는 일주일동안 잠자지 않고 장좌불와(長座不臥)하는 용맹정진을 합니다. 용맹정진에 탈락한 스님은 스스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무사히 넘긴 스님들은 힘을 얻어 더욱 분발합니다.
동안거가 끝난 후 층층계 밑에서 스님들은 "성불하십시오." 인사와 함께 흩어집니다.
#2
슬며시 웃을 수 있는 책입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동자스님이 싸리비로 쓰는 정도의 소리만 가만가만 들립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자기 전에 한 장 한 장 남기며 '그래 앞으로 채식을 하자'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그러나 다음날 치킨을 시켜먹은 적이 또 몇번이나 되는지ㅠ_ㅠ) 조금 덜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 조금 더 나누어도 되겠다는 생각. 천천히 가도 되겠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오늘 내가 욕심으로 먹고 행한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 욕심을 채우고 나니 이상하게 차오르는게 아닌 후회만 밀려옵니다. 몸은 더 둔해진 느낌입니다. 애타게 열반을 위해 힘쓰는 스님들도 욕망 앞에서 킬킬대는걸 보니 욕심내지 않기란 어쩔 수 없이 정말 어려운 것이다란 생각도 들지만,
용맹정진을 무사히 넘긴 스님은 더욱 분발하고 탈락한 스님은 오히려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고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단 한번 나태해지고 나면 끝도없이 나태해지고 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인내하면 내일 인내의 씨앗이 되지만 지금 이 순간 포기하면 내일도 포기하게 되어버립니다. 아니, 한 번 사는 인생 뭐하러 인내해? 즐기면 되는거지? 그러나 감히 말하자면 스님들이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이유는 단지 육체를 혹사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자발적 노력'의 체험과 '생각할 시간의 확보'라고 생각합니다. '만족'은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서 옵니다. 그 '노력'을 응원하는 것이 바로 '생각'이구요.
요즘 많이 소홀했는데, 내일은 꼭 중국어학원에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