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장혜영 지음 / 우드스톡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병신이라는 단어를 문득 떠올린 것은 페미니즘 서적을 읽고 있을 때였다. 며칠 전, 아이들끼리 큰 소리로 '병신아!'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나는 단호하게 물었다.


"'병신'은 어떤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지?"


열네 살 아이들은 쭈뼛쭈뼛 대답했다.


"장애인이요."
"맞아. 그러면 장애인은 장애를 원해서 가진 걸까, 원하지 않는데 가지게 된 걸까?"
"원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원하지 않은 장애를 가져서 슬플까, 기쁠까?"
"슬퍼요."
"그러면 누군가의 슬픔을 장난이나 웃음거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나빠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해. 앞으로 '병신'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나는 아이들과 병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마음 한 켠 뿌듯한 마음으로 뒤돌아섰다. 여러 단계를 걸쳐,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올바르게 교육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장애를 가진 것은 슬프다'라고 말한 명제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는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동정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장애인에 관한 책이나 영화를 찾아보아야겠다고 반성했고, 그렇게 읽게 된 책이 『어른이 되면』이다.


『어른이 되면』은 '생각많은 둘째언니' 이름으로 활동하는 유튜버 장혜영 작가가 쓴 책이다. 장혜영 작가의 한 살 터울 동생 장혜정 님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때 장애인수용시설로 보내져 18년을 지낸다. 이에 부당함을 느낀 작가는 동생이 서른 살이 되었을 무렵 탈시설을 돕는다. 일상의 패턴을 만들어가고, '언니 동생'이 아닌 '혜정이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관계망을 형성해간다.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노는 생활을 꾸려간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장애인',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비장애인'이며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정상인'이라는 것. 장애인이란 단어를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조차 '친절한 차별'이라는 것.


책의 끄트머리에는 부록처럼 다큐팀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저는 요즘 그런 생각도 들어요. 혜영 언니가 이 다큐 하면서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지인으로서의 안타까운 감정이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를 넘어서 애틋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건 무례한 일인 것 같아요. 사람은 자기가 가치 판단을 하면서 살아가는 거잖아요. 혜영 언니가 더 이상 매일 밤 혜정 언니의 안위를 걱정하며 잠들지 않아서 행복하다고 하면 그게 맞는 거겠죠.(p. 252)"


내가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문득 병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이유는 상대를 '남성' 또는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으며 인식한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해왔던 장애인을 대하는 무례한 태도만이 아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무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장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 나는 다시 병신이라는 욕을 쓰는 아이를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병신'은 어떤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라고 물은 후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삶을 장난이나 웃음거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자립‘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과 보살핌 속에서 세상에 다시 없는 존재로서 ‘자기 다움‘을 위한 여행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의 과정에서 세상 속의 자기 자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야 말로 ‘자립‘의 참된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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