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마광수 소설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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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소설 <청 춘>을 읽고......  (sappho01 씀)

 


마광수의 소설 <청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암울하다. 더구나 과거에 작가가 보여주던 섹스에 대한 낙관적 찬양은 이 소설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섹스 예찬에 대한 기대감에서). 그러나 이 소설을 작가의 변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는 세월의 풍파에 지쳐 자포자기한 늙은 투사의 체념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나도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고 전체적으로 새로운 주제가 등장함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그동안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자살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놓고 이 소설을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희극과 비극의 공존이라고 하지만, 사실을 따지고 보면 인간은 태어난 것 그 자체가 비극이다. 작가의 시 <자살자를 위하여>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죽지 말라는 강요를 받으면서 참고 살아가야 한다는 무언의 최면에 걸려서 살아갈 뿐이다. 삶의 목적을 억지로 만들어가며, 그 목적이 휘두르는 채찍질을 받으면서 살아갈 뿐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마광수 작가의 이번 소설 <청춘>은 특이하다. 전과는 다르게 자살을 주제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구성에 있어서도 기존에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녹여내고 있고, 과거에 자주 언급했던 이야기들을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해 놓고 있다. 애독자라면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더 실화같이 느껴진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대학시절을 그리고 있다. 문학서클 동인회에서 다미라는 여성을 만나 그녀와 연애하면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줄거리로 된 자서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청춘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다미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인간의 무미건조한 삶과 삶의 권태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뛰어나게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한 여성을, 남주인공이 유미주의적 시각으로 한없이 동경하는 모습을 조망자적 입장에서 서술한 이 소설은, 남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말했듯이 사랑이 전적으로 에로스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작가가 이 소설 중간 부분에서 말했듯이 에로스(성애)는 필로스(우애)와 같은 말이기에, 남주인공은 여주인공 다미에게 탐미적 경탄의 시선을보내면서 그녀와의 진지한 사랑을 이어나간다. 이것은 작가의 애정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다미와 육체관계를 갖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 소설은 다미가 자살하기 전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남주인공 화자의 추억담을 중심으로 그림같이 선명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작가가 살았을 당시의 시대배경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회고담이다. 그러기에 소설은 전체적으로 느리게 진행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이제 노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는 작가의 추억담이며, 과거에 대한 그리운 향수이기도 하다. 다미는 작가의 분신인 남주인공를 만나 그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가난하지만 진지한 사랑을 나누었고 (그녀가 부호의 애첩(愛妾)의 딸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퇴폐적 향락을 결코 포기하지못하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남주인공에게는 새롭고 낯선 환희와 경탄이지만, 다미에게는 그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누려왔던 지루한 사랑과 삶의 연속일 뿐이었다. 아마도 남주인공은 다미가 그동안 사귀어왔던 수많은 남자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두 사랑에게 있어 청춘이란 말의 뜻은 서로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남주인공이 갖는 현재의 삶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 (종국에 가서는 우리도 죽는다) 와, 다미가 갖는 과거 시점의 태도 (삶은 권태로움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 는 서로 맞닿아 있다.그러기에 이 소설은 작가의 청춘시절 회고담이고, 다미는 이른 나이에 자살해버려 현재까지도 그때 청춘시절의 싱싱한 모습으로 정지돼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미와 북한강변의 주막에 가서 듣게되는 대학생 또래의 청년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 잘 나타나 있다.

[내 나이 아직 어렸을 때에/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 어른만 되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러나 나는 지금 꿈을 이룰 수 없네/ 나는 이미 어른이기에/ 안쓰럽게 푸른 새싹으로 올라와/ 한스럽게 다 자란 싹으로 피어났던 /애닯고 허무했던 나의 희망이여/
어쨌든 내겐 아직 희망이 필요하지만/ 이 얄미운 목숨을 지탱하기 위한/ 멍텅구리 같은 희망이라도 필요하지만/ 나는 이제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점점 죽어가는 나무이기에 /나는 벌써 어른이기에/ 뒤섞인 나날 속에 지쳐 누운 추억의 그림자/ 초라한 기억 속에서 안간힘 쓰며 꿈틀대는/ 이 사랑, 이 욕정, 이 본능/ 그러나 나는 사랑을 이룰 수 없네/아 나는 어른이기에/ 절망보다 오히려 더 두려운 희망을 믿기엔 /이미 너무나 똑똑해져 버린/ 서글픈 어른이기에.]

다미는 청년의 노래가 끝나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이미 그녀는 어른이 다 되어버렸기에, 정신적으로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간의 이러한 감정의 대칭은, 작가의 현재 시점과 다미의 과거 시점이 종국에서 가서 만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남주인공은 이 노래를 듣고서, 이 노래는 대학생이 아닌 늙은 사람이 부르는 게 더 제격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미는 노래의 모든 의미를 이해하고 있기에 오히려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미의 자살 이후 남주인공은 마음의 아픔을 겪고서, 자살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다미가 쓴 <자살자를 위하여>라는 시를 보자.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마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마라 /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마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마라/ 바람이 부른 것은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마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마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자]

다미의 자살과 남주인공이 노년에 가서 느끼는 죽음에 대한 생각의 귀착점은 서로 이렇게 맞닿아 있다. 남주인공은 결국 노년에 들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다미가 자살하게 된 심정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살에 대한 긍정이요 죽음에 대한 긍정이며, 삶의 권태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자살을 실존적 문제로 다루고 있으며, 한 개인이 자살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나중에 가서 다미의 자살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사실 작가 마광수의 삶에 대한 회의론적 시각과 인간 육체에 대한 유미적인 시각은 그동안 그의 모든 저작들에서 끊임없이 보여주었던 주제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작가가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는 생각을 들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살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조명한 것인데, 이것도 일부 시(詩)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소설  장르에서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소설 형식으로 그러한 주제를 한 매혹적인 여자의 삶에 투영시켜 서술해 나갔기에, 이 소설을 독자가 받아들이기에는 꽤나 충격적일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남주인공이 다미의 친구에게서 다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울었다는 것으로 끝나며, 그동안 작가에게 보내왔던 다미의 시들을 부록으로소개하고 있다.

분명 마광수의 기존 성애소설과는 다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새로운 주제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오히려 부각되는 참신한 스타일의 소설이라서 나는 오히려 이 소설이 읽기 좋았다. 특히 <자살자를 위하여>라는 시가 소설을 통해 등장하여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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