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를 읽다 - 마광수 인생론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마광수 산문집 <멘토를 읽다> 독후감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태어난 시점부터 주어지는 길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차례로 나오며 부모, 학교,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장 올바른 길, 가장 최선의 길을 어긋남 없이 수행하기를 기대 받는다. 이것이 왜 어떠한 방식으로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만 모두가 걷고 있는 그 길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완주 하는 경쟁에서 승리하라는 요청이 있을 뿐이다. 나 또한 그 길을 걸었다. 나름대로 이러한 사회 구조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자라왔다고 생각해지만 사실 나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 의문 없이 대학에 왔고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에 떨어졌다. 20살이란 참 신기한 나이이다.

 

평탄하게 잘 굴러갈 줄 알았던 인생에 진짜 ‘내’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과 이별을 하며 의미 없이 봐왔던 전공 서적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지금껏 참아왔던, 아니 참아왔다고 느껴지지 조차 못했던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갑자기 물밀 듯이 찾아드는, 지금까지 스스로가 설정해온 자신과 다른 진짜 ‘나’의 모습에 난 적잖아 당황하고 방황했다. ‘나’라는 인물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할수록 그 괴리는 더 커졌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어릴 적 나는 오히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고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책 읽는 것을 즐기던 어린아이, 누구보다 백일장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20살의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평범함과 하찮음을 깨달아가면서 지금껏 강요받아 온 ‘걸어야만 하는 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는 항상 무의식 언저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걷고 싶지 않다고 말할 용기조차 없었다. 겉으로는 “이게 내 적성에 맞는지 모르겠어. 정말 사법고시를 봐야만 하는 걸까? 난 다른 것을 하고 싶어” 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현실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안주했다. 주어진 일은 하고 싶지 않으나 새로운 것을 시작할 용기는 없는 가장 한심한 단계에 오랜 시간 머물렀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 나이 20살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인생에 큰 목표를 갖지 마라 그것은 오히려 절망을 불러오게 된다. 비관적인 태도로 삶에 임하고 노력보다는 정열을 과거보다는 미래를 현실보다는 상상을 사랑보다는 섹스를 도덕보다는 본능을 중시하라 고 말해주는 이 책을 읽었더라면, 진짜 ‘멘토’를 읽었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까.
 
 아주 짧은 말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이 주된 목적이고, ‘결혼’은 권태일뿐이며, ‘우정’은 파괴되기 쉽다. 또한 ‘종교’는 믿지 않고, ‘행복’또한 3개의 욕구 즉 성욕, 식욕, 수면욕을 일컬으며 ‘일과 놀이’는 서로 융합되어야 한다. ‘정치’는 우리가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알아야하고, ‘죽음’이란 자고로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단촐한 요약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책에서 역설하고 있는 명제 하나하나는 마치 잔잔한 수면위에 날아드는 총알처럼 날카롭고 충격적이게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불필요한 수식 어구는 최대한 줄인 단정적인 문장만으로 진행되는 이 짧은 책이 담고 있는 의미는 결코 단정적이지도 짧지도 않다. 문장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내가 너무나 어리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무게감 있는 역설들이 주를 이뤘다.

 

책의 시작은 이러하다.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 가지않아 정신병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그야말로 무 자체이다.’ 이는 즉 동물들의 삶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관심한 인간이 인간의 삶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 불손하다고 설명되어 진다. 시작부터 알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이 책은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상을 전제로 깔고 있다.

 

사람들은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한다.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대의명분을 중요시 여기고 무의미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인식한다. 나 또한 그러한 사람들에 포함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의미 있는 행동인가. 무의미한 무언가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되뇌이며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그것을 되뇌이는 시간 자체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체 말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하게 되는 이러한 행동 패턴들, 대의명분을 찾으려 든다거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 인 것처럼 거들먹거린다거나 인간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몇 세기를 걸쳐 논쟁하고 토론한다거나 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비겁함과 나약함을 덮으려는 화려한 보호막이 아닌가. 그 껍질 뒤에 가려진 위선과 가식들을 제외하고 나면 인간에게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어쩌면 그저 우리가 사실적으로 직면하고 마주하게 되는 본능이 남지 않을 것인가.

 

사랑이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육체적 쾌락을 향한 본능, 우정이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타인을 이기고 싶어 하는 경쟁 욕, 정치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독재. 이렇게 아마 사회적 관념이나 도덕적 규약을 떠났을 때 떠오르는 인간 내면의 야생적인 본능 그 자체가 남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사람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단순한 사실이지만 가장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들을 꼬집어준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마치 사회라는 무거운 갑옷을 평생도록 입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입고 있는 그 갑옷은 사실 아무것도 막아줄 수 없으며 그것을 벗었을 때 비로소 인생의 홀가분함을 느낄 것이다 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다.

 

때문에 인간들의 사회적 성향에서 비롯되는 종교, 직업, 정치, 그리고 경쟁은 사실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된다. 종교는 다만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나약함의 발현이며 단지 몇 마디 명언을 남기고간 평범한 인간을 신으로 만든 인간의 허상이다. 정치 역시 종교와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메시아니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표현인데 사실 정치란 것은 쾌락의 추구를 향한 아귀다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정치의 기본적 성향을 이해하는 것이 정치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해결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쟁에 대한 시각 또한 신선하다. 태어날 때부터 경쟁 속에 던져지는 현대인들은 항상 타인과 앞뒤를 다투며 살아간다. 앞서 말했듯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길을 걷고 매 순간 순간이 누가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는 가의 다툼이다. 하지만 책에서 묻는다. 과연 1등이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선인가? 결론은 그렇지 않다 이다. 오히려 경쟁이라는 구도 속에서 한발자국 물러나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찾아올 수 도 , 나락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기다려라, 그리고 마음을 비워라!’ 인생을 스릴 넘치는 긴 거리의 마라톤 경주이다.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 듯 책 또한 죽음으로 맺음지어진다. 구체적으로 죽음이 어떤 것이다라는 설명은 없다. 다만 책에서 보여 지는 전반적인 태도로 미루어 보았을 때 죽음은 끝도 시작도 아니다. 다만 긴 인생의 여정에서의 휴식이고 죽음은 ‘죽음’ 그자체이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대비할수록 언젠가 갑자기 찾아올 지도 모르는 죽음을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은 인생을 살아갈 뿐이고, 순간순간에 충실하여 살아가는 시간의 마지막을 맞이하였을 때 오히려 인간의 삶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방황하는 20대들은 생각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가. 어쩌면 방황하는 20대라는 말이 조금 생소할 지도 모르겠다. 뉴스나 기사를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논쟁은 ‘방황’ 이라는 말을 10대들의 소유물로 한정짓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2차 성징이며 ‘사춘기’ 라고들 한다. 하지만 방황은 10대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부모는 왜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는가 에 대해서 고민하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정신적 육체적 혼란을 겪는다면 오히려 20대 30대 나아가 40대 그 이상의 사람들은 그들이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사회적 상황에 휩쓸리고, 모든 것의 기준이 흐릿해지는 혼란 속에서 ‘옳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자라나는 과정에서 도덕적, 유교적 사상에 바탕 한 규율을 배워왔다. 정직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국가에 충을 다하라, 학문에 정진하라.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그 명제들이 과연 절대적인 ‘정’의 입장에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에 따르면 사회는 정 과 반이 만나 합이 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고 했는데, 과연 정은 무엇이고 반은 무엇인가. 어른이 된 20대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에게 그 누구도 기준을 정의 내려 주지 않는다. 그에 대한 기준은 스스로가 겪어 나가며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는 변화지 않고 시간은 흘러간다. 변하는 것은 상황도, 사회도 아닌 사람이다. 인간이 변하고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가 변한다. 우리가 ‘정’이라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반’이 되어 있기도 하고 ‘반’이라 생각했던 것이 ‘합’이 되어있기도 한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절대적이라 일컬어지는 것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제된 정체성을 갖는 다는 것은 어쩌면 이 책에서 역설하고 있듯 인간은 어떠하다, 인생은 어떠하다 라는 의미에서 벗어나 ‘무(無)’를 인정하고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내면과 본능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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