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펄프픽션 5
마광수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마광수 --- <귀 족> 사유와 문학

"왜 이런 책을 읽어요?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려는데 사서가 물었다. 괜한 참견은 아니었다. 한 2년 도서관에서 죽치고 있으려니까 어느새 도서관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는 사서에게서 이러저러한 것을 얻어먹는 처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사서 입장에서는 뭐라고 한마디 할 수 있었으리라. 게다가 항상 무언가 있어보이는 책만 빌려오던 나의 이미지도 있었으니. 나 역시 책의 겉표지가 조금은 야하게 그려져 있었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이라니, 나는 사서의 질문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만 했고 아, 제가 실은 색골이란 게 결국은 들키고 말았군요 허허 하면서 적당히 둘러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질문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짜증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만 농담을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의 평정이 흔들리고 말았다.

"문학에는... 거짓이... 없어요."

나는 쓸데없이 이런 아리까리한 말을 하고 말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내가 그 상황에 적합한 말을 했는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네."

사서는 뚱하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물론 약간은 재수없어하는 표정도 섞여있었다

문학에는 거짓이 없다라... 나는 이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학은 삶의 총체적 표현이며,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부단한 대화 끝에서 마침내 끌어올려지는 신비한 전언이자 영혼의 단말기라는 등등의 고리타분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마광수의 소설이 문학이어야만 나는 방금했던 나의 말이 헛것이자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은 문학이 아닐지도 모를 마광수의 소설을 변호하기 위해서 문학에는 거짓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그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지 않은가. 하여간 나는 부끄럼쟁이라서 이런 이상한 문제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을 찾아내곤 막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읽어 본 마광수의 소설은 이 아저씨 참 귀여우신데에서 시작해서 오호라 놀라워라에서 이건 문학이 맞군에서 끝이 났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이처럼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계시다니 후후. 소설은 갓 대학에 올라온 가난뱅이 청년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묘사하면서 시작되고 있다. 이 청년은 신분제가 무너진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세상은 귀족들의 세상이며 돈을 가진 자 귀족 그렇지 못한 자 천민이라는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비록 수도권이긴 하나 SKY에도 못드는 대학을 나와 고만고만한 월급쟁이의 운명으로 귀결할 바에야 몸을 팔아 돈을 벌기로 작정한다. 그는 자신의 손톱 페티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손톱을 길게 기르기 시작하며 머리도 기르고 피어싱도 뻥뻥 뚫는다.

이 청년은 남창으로 살면서 여러 여자들을 겪게 되고 세상은 여전히 귀족들의 세상이지만 돈만으로는 귀족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지적이며 정신적인 요소를 찾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이 청년의 사고 방식은 그런 거다. 소크라테스가 잘생겼다면 그렇게 똑똑해지려고 노력을 했을까. 그가 남부럽지 않은 외모였다면 느닷없는 진리탐구에 열정적으로 몸을 바치려 했을까.

그는 오히려 극한의 육체적인 아름다움. 귀골로 태어난 것은 기본이요, 극한의 부로 치장한 귀부인을 만나 난생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이 소설의 제목인 귀족은 바로 그러한 사람을 일컫는다. 귀부인이 자신의 사랑을 거절하자 그는 귀부인의 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데 그 상상의 장면이 가히 압권이다.

어떤 작품이 문학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은 까다롭다. 넓게 보면 그냥 글로 씌어진 텍스트 일반이 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글은 뛰어나다며 존경과 상을 헌사하고, 어떤 글은 생까인다. 여기서 좋음과 미의 가치에 대한 기준은 불분명하다. 시대의 보편적 기준이라 해봐야 그런 것 역시 역사의 구성물이며 결과이다. 그러나 미의 기준이 상대적이긴 하지만 미를 판단하는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상대적이건 회의적이건 씨저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반하고 나는 태연과 카호짱의 빠가 되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는 것이다.

내게 있어 문학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작품에서 미학을 느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말은 내게도 애매하게 들리는데 미학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도저히 간명하게 말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 작품 귀족을 통해 얼마간의 즐거움을 체험했다. 그것은 색골에게만 통용되는 수준을 넘어 어떤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다는 체험에 기인한다. 탐미주의자 마광수 아저씨는 인간의 육체성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에 있어 읽어볼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이 야하다는둥 어쩐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조르주 바타유나 무라카미 류의 토파즈 정도는 읽으면서 자신의 감각을 다스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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