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1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 마광수 소설「로라」에 등장하는 세 여자 ]


별것도 아닌 인생이
이렇게 힘들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결혼이
이렇게 스트레스를 줄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이혼이
이렇게 복잡할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시가
이렇게 수다스러울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똥이
이렇게 안 나올 수가 없네

실은 삶과 섹스는 별것도 아니다. 그저 0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태어난 우리들이 누리는 쾌
락의 권리이다.

「로라」는 별것도 아닌 삶과 섹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무리의 남성들과, 한 무리의 여
성들이 이야기하고 섹스하고 서로를 탐하는 이야기이다. 실은, 별로 야하지도 않다. “이 책
이 왜 검열기관에 걸려야 하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농도를 지녔다. 그러나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한국의 대학사회 내에서 한 대학 교수가
이정도로나 색스러운 소설을 써냈단 이유만으로 검열기관에 주목받고 있다. 어디 지하 골방
에서 자는 곰팡이 냄새 나는 3류 소설가가 이런 책을 쓴다고 검열기관이 일일이 잡겠는가?
어디까지나 검열기관이 검열한답시고 이 책의 흥행을 부추긴 것이다. 멍청한 검열기관. 하지
만 대중에게 이 소설은 그저 그런 야한 소설로만 과소평가 되어있다. 그저 긍정적인 의미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나른한 오후에 자극적인 액션영화 같은 그런 소설로.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 「로라」는 상당히 과소평가 되어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사회 지배적인 언론에 의한 편견, 그리고 한국의 이중적인 성문화 한국에서는 양
성적인 면에서의 성문화는 금기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음성적인 면에서
의 성문화는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퇴폐적이다. 양성적인 면과 음성적
인 면의 성문화가 양극단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중적인 성문화라고 표현했다.
연세대 내에서도 마광수 교수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이 이유 없이 퍼져있고, 사회적으로 보아
도 주요 언론사들에 의한, 그리고 이중적인 성문화에 대한 편견이 심한 편이다. 이 이유로 인
해, 일반 대중들은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그저 그런 야한 소설로 여기거나, 이 책의 저자를 괴
인 혹은 변태로 여기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마광수 교수에 의하면 문학은 욕망의 배출구, 카타르시스의 장이다. 그렇다
면 어째서 이 소설에서 우리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첫
째로,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성행위 묘사를 들 수 있다. 물론, 솔직함과 담백함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하지만 한국의 이중적인 성문화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보수적인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보아 솔직한 편이다. 그리고 담백함은 사실적인 성행위 묘사에서 나온다. 인터넷 등에
서 떠도는 일반적인 “야설”들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고, 쓸데없는 자극만 주는데 비해
「로라」에서의 성행위 묘사는 그 자체가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
다. 둘째로,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성적 판타지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한
국인들의 성적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들의 매력이다.

검열기관에 의해서 과대평가 되어있고, 대중에 의해서는 과소평가되는 이 소설에서 우리가
쾌락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과장되어 있지만, 우리의 욕망과 삶을 반영하
는 살아있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에게 깊이 인상을 받은 나는 세 여자를 통해 이 책을 보
았다.

<로라 : 아프로디테>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는 일부일처의 수호신, 가정의 신으로 제우스를 끊임없이 속박하고,
제우스와 관계한 여자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복수하면서도 끝까지 제우스에게 집착한다. 헤라
는 가장 정상적이라고 여겨지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지금까지도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수
호되고 있는 사회의 주류적인 가치관 일부일처제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이러
한 가치에 대해 반동적인 존재들이다.
헤라와 반대되는 인물로는 아프로디테를 들 수 있다. 아프로디테는 성애의 상징으로 평등하
고 개방적인 다자연애를 대표한다. 다부다처제의 표상 아프로디테.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기
도 하고, 그 이름값을 하듯 자신과 결혼한 남편뿐만 아니라 다른 남신(男神)들과도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았다. 제우스의 전령이자 교역의 신인 헤르메스와의 사이에서는 남성성과 여
성성을 모두 가진 헤르마프로디테를 가졌는데, 이 동성구유 신은 "여성의 오르가즘이 남성
보다 삼백 배나 더 강렬하다"는 이야기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아프로디테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의 사이에서 결혼의 신 히멘을 낳았다고 한다.

로라는 물론 아이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자유로운 성애의 상징으로 개방적인 다자연애를 하
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점에서 아프로디테와 유사하다. 로라라는 캐릭터의 모티브가 아프로
디테가 아닐까 생각 될 정도이다. 아프로디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일단 예쁘다. 그리고 섹
시하다. 또 야(野)하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남자와의 섹스라면 유부녀는 짝이 있든 마다
하지 않고 즐긴다.
아프로디테가 미의 상징이듯, 그녀는 남자가 욕망하는 대상 그 자체이다. 그 덕에 주변에
는 남자가 줄을 선다. 섹시한 장미화랑의 그녀 로라. 마초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소위
“걸레”겠지만, 아는가? 마초적인 열망을 품은 사람일수록 실은 이런 여자를 꿈꾼다는 것
을.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여자. 하지만 너무나 섹시하고 예쁜 그녀.
그녀와 남자들이 하는 섹스는 하는 행위나 하는 상황이나,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
는 내용이다. 남산타워 밑에서 차를 세워놓고(그것도 운전기사가 앞에 멀쩡히 있는데!)하는
카섹스는 판타지의 극치이다. 운전기사에게 보이고 있다는 점(실제로 운전기사가 볼 수는 없
겠지만 운전기사가 둘의 섹스를 의식한다.)이 노출욕망을 자극한다. 로라가 명목상이나마 유
부녀라는 것도 욕망을 자극한다. 좁은 차안에서의 서로를 탐닉하고 있다는 것이 또 욕망을
자극한다. 그녀는 남성들이 꿈꾸는 성적 판타지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그녀는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로라라는 캐릭터의 존재 의의가 이 소설
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성적 자극을 주고,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
각된다. 그녀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 단지 소설 속에서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하나
의 판타지이다.
현실의 우리와 더 가까운 것이 명희와 미라이다. 판타지는 현실과 거리가 멀기에 판타지
일 것이다.

<명희 : 억압된 욕망>

명희는 못생겼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소설에서의 그녀는 로라 보다 덜 섹시
하고 덜 야(野)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녀가 성적매력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적인 매력을 자신의 쾌락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희는 로라에 대한 콤
플렉스로 인해 자신의 성적인 본능까지 잠가버린다. 초기의 로라에 대한 그녀의 질투와 천민
에 대한 집착은 신경질 적이기까지 하다.

“…전 선생님의 눈길이 아까부터 언니한테로 더 쏠려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구요.”
“…제가 좀더 여쭤볼게요. 내가 정말 예뻐보이나요?”
“아무튼 선생님은 절 사랑해 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전 파멸이에요.”

그녀의 집착적인 모습과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대중매체에 짜 맞춰진 미인들에게 외모 콤
플렉스를 느끼고,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억눌러버리는 많은 한국 여성들을 연상시킨다. 많
은 한국 여성들은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므로, 당연히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일에 자신
감이 없어지고, 성적인 욕구는 있지만 성적인 욕구를 발산시키지 못하기에 결국 자신의 욕망
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 명희는 그러한 현대의 한국 여성들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그녀들은 사랑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왜? 자신
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니까. 로라는 외모적인 예쁨과 섹시함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하
지만 어떤 여성도 로라만큼 섹시하거나 야(野)하지 못하다. 로라는 그야말로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의 결정체, 이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럼 로라 보다 못한 여자는 전부 야(野)할
수 없는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녀는 대체 앞으로의 긴긴 날들을 어떤 모양새로 살아나가게 될까…. 만약 아주 늙어버
린 후엔…. 그리고 돈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게 되는 경우라면….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며 명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것은 또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
는 것이기도 했다.”

명희의 이런 모습은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억압된 남성의 욕망을 상징
하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여성과 마찬가지
로 남성에게 요구되는 적절한 사회적 지위나, 혹은 돈, 혹은 젊음이 없어지더라도 지금처럼
이렇게 야(野)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젊음과 미모는 남성에게는 사회
적 지위와 돈이다. 현실에서 섹시하고 야(野)하고 색스럽게 살아가기 위해서 여자는 젊음과
미모, 남자는 돈과 사회적 지위가 필요하다.
물론 명희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해 나가고, 자신의 성적인 권리를 되찾는다. 그러나 언
제까지 갈 수 있을까. 로라라면 몰라도, 명희라면 시간이 흐르고 명희의 성적인 매력이 떨어
지게 되는 날이면, 명희는 다시 외모 콤플렉스와 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명희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나는 고민에 빠진다. 우리의 성적인 매력이 없을 때 우리는 우울
하게도 ‘오랫동안 같이 늙어가’며 정을 쌓아야 하는, 담백한 두부를 먹는 것 같은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그런 가정적이고 사회적으로 기능적인 소위 정상적
이라는 사랑과 삶은 신기루인 것일까?

<미라 : 현실의 현실>

미라는 작중 비중이 큰 캐릭터는 아니다. 후반부 <삶보다는 돈>과 <그저 그런>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동생을 염려하는 통속적이고 모범적인 ‘누나’인 캐릭터
이다. 출판사 직원인 미라는 돈 때문에 G사장의 아버지와 결혼한다. 「로라」에 어울리
지 않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로 작중에서도 다른 캐릭터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통속적인 드라마처럼, 좋게 말하면 그녀는 현재의 욕망을 버리고 미래의 욕망을 선택
하고, 나쁘게 말하면 돈 때문에 팔려나간다. 가족, 특히 동생을 위해 희생했다고도 볼 수 있
다. 작가가 인위적인 결말을 위해 등장시킨 작위적인 캐릭터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러나 그
녀는 현실의 현실, 현실보다 더 가까운 현실상이다.
그녀의 판타지는 얕고 짧다.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는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는 로
라라는 캐릭터의 판타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잔인한 현실을 들먹이며 끝을 맺고 있는 소설
의 결말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즉, 「로라」라는 소설의 판타지로부터, 결말을 맺고 다
시 현실의 우울함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미라의 역할이다.

현실은 잔인하다. 굳이 경제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현재의 쾌락을 미래의 쾌락과 바
꾸며 살아가고 있다. 기회비용이라는 이름의 잔혹함… 누가 그녀를 욕할 수 있는가? 그녀는
단지 미래의 쾌락을 위해 현재를 희생시켰을 뿐인데.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녀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다.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가 가장 부정
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소설의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문학, 문학이란 ‘욕망의 배
출구, 카타르시스의 장’의 기조에 반하는 캐릭터라서가 아닐까.

<세 여자속의 선택>

만약 내가 소설 속에 살고 있는 인물이라면,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
는 당당히 로라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로라는 권태 속에 사는 여자이다. 그러나 권태 속에
서의 구원이 섹스뿐이라고 해도, 섹스뿐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그녀가 보여주는 판타지, 판
타지 그 자체인 그녀, 속이 훤히 비춰지는 옷을 입을 수 있는 자유, 섹스하고 싶은 사람과
섹스 할 수 있는 능력, 섹스 후에도 별다른 트러블 없이 또 다시 자신이 원하는 누군가와
섹스 할 수 있는 자유가 난 부럽다. 갈구하지만 현실에서는 끝내 채워지지 않을 욕망. 권태
속이라도 끝없이 섹스로 욕망을 채울 수만 있다면, 이 삶이 현실에 얽매인 삶보다는 오히려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울한 현실로 돌아오면 다르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현실보다 더 잔인한 조건에
의해 욕망을 제한 당한다. 사랑하는 사람, 공인되어 있는 연인과 섹스를 할 때에도 임신의
두려움을 안고 섹스 해야 하고, 다른 여자와 섹스 할 때에는 지나온 삶에서 배워온 도덕률
에 따라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결정적으로 내 잘나지 못한 능력 때문에 나의 성적 판타지
는 끝내 충족되지 않는다. 선택은 로라이지만, 현실 속에서 부자유의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나는, 명희와 더 가까운 캐릭터인 것 같다.
늘 이런 자극적인 소설의 끝은 허무했다. 그러나 허무하지만 늘 당연하게 여겨온 귀결로 이
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소설이 훈계조로 단순히 섹스와 욕망의 허무함
을 말하고 이제 그것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면, 나는 당장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
다. 섹스는 허무하다면서,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은 섹스를 한다. 알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권태를 채워주는 것은 사랑과 섹스가 아닌가.
명희는 로라를 꿈꾸면서 사람들 사이를 헤맨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로라를 꿈꾸면서 명희
처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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